[사람 사람] 오페라 후원에 팔걷은 치과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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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저녁 술값으로 몇십만원은 쉽게 쓰면서도 문화단체 기금으로 몇만원 내는 데는 인색한 게 우리 현실입니다.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문화.예술인들에게 힘을 주는 일이 될 것 같아 시작했습니다."

김재철(50) 코엑스 치과병원장은 1년 전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일종의 오페라 후원 모임인 '프렌들리 클럽(Friendly Club)'이다. 대중가요에 밀려 소외돼 가는 오페라 가수들을 격려하자는 취지에서 몇몇이 힘을 모았다고 한다.

이 클럽이 결성 1주년을 맞아 생일잔치 겸 기금 마련을 위한 이색 음악회를 23일 개최한다. '오페라 인 시네마(Opera in Cinema)'란 이름으로 한강 유람선에서 벌이는 선상 음악회다. 김진수 국제오페라단 단장과 소프라노 유미자, 메조소프라노 황선경씨 등이 출연한다. 백남선 원자력병원장, 박향미 화진화장품 부회장, 이영림 한의원장 등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마련했다.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클래식 공연과는 달리 와인이 곁들여진 저녁식사가 마련되며, 400석의 좌석 중 100석이 지체 부자유자와 소년소녀 가장에게 할애됐다. 오페라를 감상하기 힘든 처지에 있는 이웃과 감동을 같이 나누자는 취지다.

"일반인이 장애인을 부축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와인도 즐기고 오페라도 감상하는 특별한 음악회가 될겁니다."

김 원장이 오페라 후원에 나선 것은 외국 생활을 하면서 받은 '충격'때문이었다.

"이탈리아로 출장을 갔을 때였어요. 우연히 한 파티에 참석하게 됐죠. 내딴에는 영어.일어 잘하고 실력있는 의사라고 자부했는데 거기에선 꼭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어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칸초네 한두 곡 쯤은 거뜬히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즐기더군요.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졌어요."

그는 서울로 돌아온 뒤 뜻 맞는 사람들을 규합해 같이 오페라 공연을 찾아다녔다. 공연이 끝난 뒤 가수들을 격려하는 뒤풀이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베르디 오페라의 '축배의 노래'등 몇 곡쯤은 부를 줄 아는 정도가 됐다고 한다. 경희대 치대를 나온 그는 개원 치과의로 일하다 1982년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대에서 구강외과 박사학위를 받았고, 95년부터 3년간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에서 교환교수로 있었다.

글=이정민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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