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소액진료비 '의보 제외'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선정(崔善政)보건복지부장관이 어제 대통령에게 새해 주요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소액 진료비 본인 부담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료비를 자신의 저축계좌에 강제 적립토록 해 일정금액 이하의 진료비에 대해 의료보험 혜택 없이 전액 계좌에서 지급토록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연간 1조원에 이르는 의료보험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이같은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제도가 만성질환이나 성인병 등에 대한 의료보험 혜택을 확대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험료 이중부과나 보험료의 편법 인상과 다를 바 없다. 서민 가계의 주름살이 가뜩이나 깊어진 이 때 정부가 왜 이같은 계획을 내놨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구조적 의료보험 적자란 짐을 국민에게 떠넘기겠다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잦은 보험료 인상과 의약분업 실시 등으로 의료비 부담이 늘어난 상태다.

더구나 이 제도는 모든 계층이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싼값의 의료 혜택을 받게 하는 의료보험 본래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본인 부담 기준이 얼마로 결정될지 알 수 없지만 동네의원에서 초진 기준으로 현재 2천2백원을 내는 감기환자의 경우 이 제도가 시행되면 1만4천원을 부담해야 한다.

금액이 일곱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니 저소득층이나 병.의원을 자주 찾게 되는 노령층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또 소액 진료비를 본인이 부담하면 가벼운 질병으로 병.의원을 무절제하게 이용하는 관행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무시한 소리다. 의약분업 실시로 병.의원부터 찾도록 해놓고선 이제 와서 자주 가지 말라고 소맷자락을 붙잡겠다는 것인가.

남의 나라 제도를 덮어놓고 도입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각계각층이 머리를 맞대고 서민들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도 의료보험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