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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러블리 본즈’] 가족 곁 맴도는 소녀 영혼…관점 다른 스릴러 보는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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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엽기적인 범죄, 추적과 복수 혹은 단죄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공식에서 벗어난 스릴러를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러블리 본즈’(25일 개봉·사진)를 권한다. ‘러블리 본즈’는 여느 할리우드 스릴러처럼 살인사건으로 시작하지만, 그 이후를 다루는 관점과 방식은 전혀 다르다. 살해 당한 열네 살 소녀의 영혼이 가족 곁을 떠나지 못한다는 설정부터 그렇다. 소녀가 떠나지 못하는 건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사랑과 증오의 끈을 놓지 못해서다. 소녀는 지상과 천상의 경계(in-between)에 머물면서 자신으로 인해 산산 조각난 가정, 끔찍한 죄를 저지르고도 유유히 일상을 이어가는 범인을 지켜본다.

죽어서도 쉬지 못하는 영혼이 주인공인 스릴러라니, ‘반지의 제왕’ 3부작의 피터 잭슨 감독과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가 일찌감치 눈독을 들일 법도 했다. 2002년 발표돼 미국에서 1400만 부가 팔렸다는 앨리스 세볼드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이제 막 첫사랑에 눈을 뜬 수지(시얼샤 로넌)는 데이트 약속을 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이웃집 남자 하비(스탠리 투치)에게 살해당한다. 혼자 사는 하비는 겉모습만 봐서는 너무나 평범한 이웃 아저씨.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고, 수사는 미궁에 빠진다.

수지의 눈을 통해 한 가족에 닥친 비극은 선명하게 그려진다. 아빠(마크 월버그)는 범인을 찾아내느라 편집증세마저 보인다. 엄마(레이철 와이즈)는 달라진 남편의 모습과 자식을 잃은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남은 아이들을 두고 가출한다. 수지의 여동생은 본능적으로 하비가 뭔가 감추고 있음을 느끼고 살인마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위험을 무릅쓴다. 구성원의 죽음으로 해체됐던 가정이 결국 다시 결합하는 과정은, 감상주의라고 치부하기엔 꽤나 뭉클하게 다가온다. 거듭 말하지만, 할리우드식 가족애를 수지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덕분일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중간계(middle earth)’를 영상으로 빚어냈던 피터 잭슨답게, 수지가 머무는 곳에 대한 묘사는 황홀할 정도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맡았던 웨타 스튜디오의 작품이다. 채 피어보지도 못한 영혼이 지닌 억울함과 울분과 슬픔 같은 여러 빛깔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이만치 그려내기도 쉽지 않을 듯싶다. 이 영화에 대한 미국 평단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킹콩’(2005년)에 이은 또 다른 범작으로 치는 분위기다. 판타지와 스릴러와 드라마를 오가지만 그 연결이나 착지점이 어정쩡한 점, 피터 잭슨에 대한 기대감을 배신당한 듯한 감성적 색채 등이 이유다. 범인의 다소 어이없는 최후도 깔끔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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