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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감독 발자취 담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한국영화 80년사를 수놓은 감독들의 발자취를 집대성할 '한국영화감독사전' 의 편찬작업이 활발하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급속하게 성장한 덩치와 달리 자료 발굴과 정리 등 내실 다지기엔 미흡했던 영화계의 반성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사전편찬은 장르.분야에 관계없이 문화의 가장 기초적인 작업. 그러나 거의 한 세기에 이르는 한국영화사에서 변변한 감독사전 하나 없었던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감독사전은 영화주간지 씨네21이 99년에 선보였던 것 정도. 그나마 한국편은 외국감독 뒤에 옹색하게 덧붙인 꼴이었다.

한국감독협회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올해 주요 사업으로 『한국영화감독사전』을 펴내기로 하고 실무진을 구성해 현재 자료정리에 한창이다.

이번 사전에는 한국영화의 발아기인 20년대부터 2000년까지 활동했던 영화 감독 6백여명의 프로필.작품목록.작품세계 등을 고루 실을 예정이다.

임원식 감독협회장.이용관 영화진흥위 부위원장.주진숙 중앙대(영화학과)교수.변재란 중앙대 강사 네 명이 실무위원을 맡아 지난해 말부터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임원식 회장은 "연말 출간을 목표로 현재 여기저기 흩어진 정보를 모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번 『…감독사전』의 전초 작업으로 이달 중순엔 『여성영화인사전』이 우선 선보인다.

55년부터 80년대까지 한국영화사의 한켠을 지켰던 여성영화인들을 총망라했다. 배우.감독은 물론 미술.분장 등 각종 스태프를 모두 소개할 계획이다.

실무를 맡은 주진숙 교수는 "여성영화인을 정리하면서 감독사전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며 "이번 사전으로 한국영화사의 많은 공백이 메워질 것" 이라고 기대했다.

'여성영화인사전'을 준비하면서 80년대에 잠시 활동했던 여성감독 배화민씨를 찾아낸 것처럼 그동안 기억에서 사라진 많은 감독을 새로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역시 자료확보. 편찬위원들은 신문.잡지.학술지.광고 등을 모두 검색하되 필요할 경우엔 관계자의 증언도 참고하기로 했다.

임원식 회장은 "글로 남아있는 자료로는 사전을 만들기에 불충분하다" 며 "연구원을 일본에 보내 일제시대의 기록을 보완하고 생존 감독 등을 인터뷰해 한국영화 연구의 기본 텍스트로 손색이 없게 만들 것" 이라고 덧붙였다.

편찬위원들은 상반기에 자료조사를 마무리하고 하반기부터 집필에 들어갈 예정. 한 편의 작품이라도 남긴 감독이면 모두 소개한다는 원칙을 정해놓았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도 있다. 일단 50년대 이전의 영화 텍스트.필름 등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얼마나 충실한 사전이 나올지 미지수다.

또 단순히 지나간 감독들을 재정리하는 차원이 아니다. 각 감독들을 꼼꼼하게 재평가해 한국영화사의 새로운 지형도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도 뒤따른다.

감독협회.영진위란 특정 조직의 테두리를 넘어 한국영화 전공자의 동참을 적극 유도하는 등 운영상의 지혜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어렵게 시작한 작업인 만큼 그 결과물 또한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회장은 "CD롬 제작, 영문판 출간, 북한감독 사전 준비 등 향후 할 일이 많다" 며 "결코 1회성 혹은 전시성 행사로 끝나지 않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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