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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철도 안전불감증 이수현을 죽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한국 유학생 이수현(李秀賢.26)씨가 일본 철도회사의 안전불감증으로 희생당했다는 여론이 일본에서 일고 있다.

李씨가 사고를 당한 도쿄(東京)신주쿠(新宿)구 신오쿠보(新大久保)역은 민영 JR동(東)일본이 관할하는 곳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30일 "JR동일본 관할 역내에서 승객이 전철에 치여 죽거나 다친 사고는 1997~2000년 1백72건에 이르고 사상자의 70%가 술취한 사람으로 주로 야간에 벌어졌다" 며 "JR동일본의 안전대책이 미흡하다" 고 강조했다.

실제로 신오쿠보역에 안전대책이 제대로 있었으면 李씨는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승강장이 굽어 있어 전철이 승강장 상황을 보기 힘든 일본 수도권내 25개역 68개 승강장에는 추락감시시스템이 설치돼 있어 승객이 철로로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전철이 서도록 돼 있다.

그러나 승강장의 폭이 5m도 않돼 승객이 추락하기 쉬운 신오쿠보역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

다만 누구라도 누르면 전철이 급정거하는 비상정치단추가 승강장 내 여섯 곳에 설치돼 있었지만 단추는 눌러지지 않았다.

승객들은 이를 잘 모르는 데다 신오쿠보역의 역무원 네명은 오전 7시~8시50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승강장에서 안전관리 업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李씨의 부모들도 "역무원이 있었더라도 술취한 사람을 제지하는 등 안전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 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게다가 李씨가 내려간 철로 옆에는 전철이 올 경우 급히 피할 수 있는 피난처도 없었다.

일본 언론들은 이에 대해 JR동일본측을 인용해 "JR동일본측이 사후 안전조치에 여전히 미흡한 자세" 라고 비난했다.

JR동일본측은 "신오쿠보역은 저녁 퇴근길에도 혼잡하지 않아 역무원이 안전관리업무를 하지 않았던 데다 전철이 李씨를 보고 급정거해도 1백70m 정도를 진행하기 때문에 불상사는 불가피했을 것" 이라며 "역내에서의 술 판매 금지조치도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어렵다" 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해 민영 난보쿠(南北)선과 공영 미타(三田)선은 평소에는 승강장과 철로를 단절했다가 전철이 들어오면 출입구만 열리는 안전벽을 설치해 지금까지 추락사고가 없으나 대부분 철도회사들은 경비문제를 이유로 이를 회피하고 있어 전철역 추락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고 보도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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