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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열전] 제주 양중해 시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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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저 푸른 물결 외치는/거센 바다로 떠나가는 배/내 영원히 잊지 못할/님 실을 저배야/야속해라/날 바닷가에 홀로 버리고/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가곡의 노랫말로 널리 알려진 시 ‘떠나가는 배.’

평론가들은 이 시만큼 섬사람 특유의 이별의 정한(情恨)을 애절하게 담은 시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제주문화원장 양중해(梁重海·74)씨가 이 시의 작가다.

탐라 개벽신화의 주인공인 고(高)·양(梁)·부(夫)삼성(三姓)가운데 하나인 梁씨니 제주토박이임이 분명하다.삼별초의 제주항쟁 때 제주성주였던 양호(梁浩)가 그의 21대 선조다.

6 ·25 사변을 맞아 1952년 제주에 피난왔던 소설가 계용묵(桂鎔默·1904∼1961)이 절친한 그의 문학동지였고 50년대 중반 제주에서 한때 살다 뭍으로 되돌아간 시인 박목월(朴木月·1916∼1978)이 그의 술친구다.

52년 제주도의 첫 종합교양지였던 ‘신문화’를 계용묵과 함께 창간했고 53년 피란 문인들과 함께 제주문단의 첫 시문학동인지인 ‘흑산호’의 동인으로도 참여했다.

50년대 잠시동안 제주일중에서 음악교사를 했던 변훈(邊焄·2000년 작고)씨가 동료 국어교사였던 그의 시 ‘떠나가는 배’에 곡을 붙였다.

63년 제주문인으로는 처음으로 뭍이 아닌 제주땅에서 첫 시집 ‘파도’를 발간한 것도 그였다.

그는 현대제주문학과 문화의 중심에 있었고 뭍과 섬문화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

지금은 ‘한라문화제’로 옷을 바꿔 입었지만 그 전신인 ‘제주예술제’를 62년에 출범시킨 것도 그의 손을 거쳐서였다.

그는 94년 35년여의 제주대 국문과 교수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문화원’을 만들어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제주문화를 지키고 가꾸고 있다.

제주문화를 걱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그의 목소리는 긴 여운을 남겼다.

“제주의 문화행사는 관주도에 천편일률적이야.확대만이 능사가 아니라 정예화된 진수를 선보여야 할 때인데…. 제주도를 ‘제주다운’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원’으로 만들어야해.규제받는 공원이 아니라 아끼고 가꾸는 공원 말이야….”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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