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고르는 것은 독자의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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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은 지난 15일 3개 신문사가 60% 이상 시장을 차지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는 내용 등의 신문관계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여론의 다양성을 위해 선진국들도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KBS 역시 같은 논리로 방송했다. 그러나 이들이 선진국 매체 정책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과연 선진국 신문 정책의 실상은 어떨까.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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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보는 건 독자의 자유=자연 성장해 도달한 신문시장 점유율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신문을 보는 건 독자의 자유이며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은 프랑스.이탈리아.노르웨이 등의 사례를 든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인수.합병이나 지분 이동 등 특수한 경우에만 점유율을 제한한다는 게 언론학자들의 설명이다. 인위적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또 미국.영국.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신문의 시장 점유율을 규제하는 법 자체가 없다. 신문.방송 교차 소유나 방송 자체에 대해서만 일정 부분 통제할 뿐이다. 영국의 경우 신문 시장의 20% 이상을 점유하는 신문사가 전국 지상파 방송을 소유하는 데 제한이 따른다. 이런 언론정책 등으로 아일랜드.영국 등 유럽국가들에서 몇 개 신문사(그룹)가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보이는 사례는 흔한 일이다.

◆'점유율 제한 특별법'위헌 결정 받아=1970~80년대 유럽에서도 신문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특별법이 제정됐다. 프랑스의 경우 좌파정권인 사회당이 84년 점유율을 20%(전국지)로 제한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신문사 경영현황을 문화부 장관에게 보고토록 한 조항도 있었다. 그러나 이 법은 86년 위헌 결정을 받았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고 시장의 원칙을 거스르는 조항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그해 11월 다시 만들어진 법에는 '인수.합병 시에만 시장 점유율을 30%로 제한하는'내용이 포함됐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열린우리당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 내용을 명확히 밝혔다.

또 프랑스와 함께 주로 언급되는 독일의 경우 신문법은 통제가 아니라 언론자유를 확대하는 취지의 특별법이다. 중앙대 성동규 교수는 "(철학이 분명한 외국과 달리)이번 법안은 '조중동'을 견제하려는 단기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보편 타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자율, 방송은 규제=연세대 윤영철(신문방송학)교수 등 많은 언론학자는 선진 외국의 신문 정책을 '자율 확대, 규제 완화'로 요약한다. 정부 규제는 최소화하고 조세 감면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는다.

반면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사용하는 방송엔 보다 엄격하고 철저한 규제정책을 펴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방송사 소유 지분을 제한하고 방송의 공정성을 위한 내용 규제도 철저하다. 숙명여대 박천일 교수는 "현 정부의 미디어 정책은 세계 흐름에 역행해 민영 미디어 산업의 활성화를 막을 우려가 있다"며 "결국 정부 또는 공공 미디어 소유를 강화하려는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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