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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리스트' 파문] 한나라당 "불법 계좌추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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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96년 총선 때 안기부 자금지원 리스트' 가 공개된 9일 한나라당은 하루 종일 벌집 쑤신 듯했다.

안기부 자금 지원 사건과 의원 이적(移籍)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국가위기비상대책위' 와 '김대중 신(新)독재 저지투쟁위' 에선 거친 비판이 계속됐다.

비상대책위원장인 하순봉(河舜鳳)부총재는 마호메트의 말(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을 인용하며 "야당파괴로 재집권 야욕을 드러낸 현 정권의 '신독재' 를 저지하고 도탄에 빠진 국가를 구하기 위한 성스런 대열에 나서자" 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은 대응의 초점을 '검찰의 편파수사' 에 맞췄다.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진실을 밝히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면서 "그러나 제대로 밝혀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이 과거의 적폐(積弊)를 청산하기 위해 공정하게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법을 행사한다며 야당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고 지적했다.

그런 의심과 판단 때문인지 李총재는 검찰의 안기부 자금 수사상황을 "왜곡된 한국정치의 단면이며 불공정한 구태(舊態)정치" 라고 단정했다.

당직자들은 구체적으로 "검찰수사가 'DJ 4대 정치자금(20억원+α, 6백70억원+α, 15.16대 총선자금, 15대 대선자금)' 에도 적용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金대통령은 정치자금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사람" 이라면서 "DJ비자금을 수사해야만 국민이 공평하다고 수긍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리스트 내용' 은 검찰이 야당의원들의 계좌를 집요하게 추적했다는 증거라고 역공세를 펼쳤다. 김기배(金杞培)총장은 "모든 의원의 계좌를 무차별적으로 뒤지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검찰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고 성토했다.

한나라당은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의 즉각 사퇴 요구도 덧붙였다.

그렇지만 한나라당 일각에선 이같은 맞불작전의 한계에 고심하고 있다. 고위 당직자는 "여론의 흐름이 중요하다" 면서 "李총재는 자금 실체 논란에선 한발 비켜서 있다가 적절한 시점에 유감을 표시하면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 이라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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