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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도덕성·투명성 살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새해 우리가 필사적으로 떠올려야 할 화두는 도덕성이며 투명성이다.

지난 한해 우리는 이 둘을 거의 완전히 잃다시피했다.

정부는 정부대로 내내 국민을 속였고, 국회는 국회대로 내내 국민을 속였으며, 금융권은 금융권대로 내내 국민을 속였다. 속인 것만큼 도덕성이 무너지고 속인 것만큼 투명성이 상실됐다.

상실해도 벌 받는 사람이 없고 무너져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더 무서운 것은 도덕성과 투명성에 대한 사고와 의식의 실종이다.

그것을 다시 재건하고 재정립하고 제고해야겠다는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성은 가속적으로 더욱 무너지고 투명성은 가속적으로 더욱 파괴됐다.

무너지고 파괴되는 것만큼 지표(指標)도 잃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는 절규가 지난 한해 내내 일었다.

이런 상태로 우리는 올 한해를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다. 우선 시장이 온전할 수가 없고,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경제가 바로 살아날 수가 없다.

개발 시대는 경제가 직선적으로 뻗어갔다. 직선성장 하는 것만큼 시장도 사회도 도덕성이며 투명성을 별로 따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화.개방화 시대다. 길은 사통팔달하고 창문은 모두 열렸다. 바람 정도가 아니라 폭풍이 쉴 새 없이 일고 그 폭풍의 기류도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고, 아무것도 확정할 수가 없다.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시대이며 불확정성의 시대다.

이런 시대일수록 살아남는 방법은 도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다. 정부가 거짓말하면 안 된다. 말을 함부로 바꿔서도 안 된다. 기업도 은행도 일반인도 다를 것이 없다. 시장에 '믿음' 을 줘야 시장이 활성화한다.

자율적 시장 참여자들을 설득하는 길이 바로 믿음이며, 그들을 역동적으로 시장에 참여케 하는 것이 곧 믿음이다. 지금 시장 사람들은 정책결정자나 정부당국자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면 시장은 오히려 거꾸로 한다. 믿음이 부서져 있기 때문이다.

이 '믿음' 을 갖게 하는 것, 사람들 사이에 '믿음' 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이 도덕성이며 투명성이다.

어느 사회든 사회는 모름지기 3개의 자본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물질자본과 인간자본, 그리고 사회자본이 그것이다.

물질자본이 재화이고 인간자본이 노동이라면, 사회자본의 전형은 도덕성이며 투명성이다.

이 도덕성과 투명성이 사회적 신뢰, 이른바 사람들 사이에 믿음을 불러 세우고, '협동' 이며 '화합' 을 일궈낸다.

물질자본과 인간자본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줄어드는데 반해, 사회자본은 쓰면 쓸수록 정반대로 증가한다.

도덕을 이행하면 할수록 더욱 도덕적이 되고, 협동을 하면 할수록 더욱 협동적이 되고, 화합을 하면 할수록 더욱 화합적이 된다.

그 반대도 진리다. 더욱이 물질자본과 인간자본이 환경을 파괴하고 공해를 일으켜서 사용할수록 인간에게 혜택을 주는 바가 적어지지만, 사회자본은 쓰면 쓸수록 사람들에게 더욱 시혜적이 된다.

우리는 이 가장 시혜적인 사회자본이 파괴돼 있다. 1990년대 이후 해마다 그 파괴가 가속화하다가 지난 한해는 거의 절정에 달했다.

개혁은 도덕성.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개혁은 조직의 슬림화와 인원감축을 전제로 한다. 더 적나라하게는 '사람 쫓아내는 것' 이다.

생계의 장에서 쫓겨나는 것은 치명적 고통이다. 이 고통을 주는 것만큼 그 고통을 결정한 권력주체가 도덕적이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권력주체의 부정과 비리의혹이 난무하는 판에서는 아무도 승복하지 않고 아무도 고통을 감내하려 하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 노조는 '세계적' 이 아니라 '역사적' 이라고 외국인들은 말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에 가까운 나라의 노조치고 이렇게 사생결단적인 노조는 없다고 한다. 이런 노조에 도덕성.투명성 없이 설득이 가능하겠는가.

'요새(要塞)' 는 외부로부터 탈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해체된다는 명언이 있다. 도덕성.투명성이 파괴될 때 내부의 화합이 무너지고 '집안도둑' 이 들끓는다. 그때 요새는 저절로 무너진다. 도덕성.투명성이야말로 사회의 근본이며 삶의 터전이다. 우리 모두 올 한해 그 근본 그 터전으로 돌아가자.

송복 <연세대.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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