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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시대] 5년내 전사업 확산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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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드디어 1주일에 닷새만 근무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월급쟁이로선 매주 이틀씩 쉴 수 있어 좋다.

아이들도 토요일 수업을 안 하므로 신이 났다. 주부들도 남편이 일찍 들어오고 집안 일을 도와주니까 좋다.

그렇다고 용돈이 한정돼 있는 마당에 매주 놀러다닐 수만은 없으므로 취미생활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

기업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종업원들이 일하는 시간은 줄어드는데 월급은 그대로 주므로 비용이 더 들어가는 셈이다.

토요일 오전에 공장을 돌리려면 임금을 더 얹어주어야 한다. 물론 주말 연휴에 푹 쉰 종업원들이 더욱 열심히 일해주길 기대는 하지만.

이같이 주 5일 근무제도는 가정은 물론 기업과 산업.사회.문화.국민의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이다.

◇ 디지털 경제체제 촉진〓법정근로시간 단축은 곧 근무일수를 6일에서 5일로 줄이는 것이다. 직장인의 생활주기가 바뀌는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주진우 정책2국장은 "그전처럼 단순히 근무시간이 몇시간 줄어드는 게 아니라 근무일수가 하루 단축되기 때문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 이라며 "건강을 희생할 정도로 일을 많이 하는 게 미덕이던 개발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한다" 고 평가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는 '빨리 빨리' 를 강조해 부실을 낳았는데 주 5일 근무시대를 맞아 '천천히 튼튼히' 라는 21세기형 선진의식이 확산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주 5일 근무제도가 우리 경제를 제조업 중심에서 디지털 경제체제로의 변화를 촉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력보다 지식의 정도가 기업경영의 핵심요소로 작용하도록 함으로써 산업구조를 제조업 중심의 단순 대량생산 시스템에서 지식.디지털 경제체제로 바꾸도록 한다는 것이다.

◇ 새로운 트렌드 예고〓1997년부터 주 5일 근무하는 LG칼텍스정유의 이영원(40)부장은 "토요일은 나만의 시간으로 테니스 등을 하고, 일요일은 가족과 즐기는 날로 정해 함께 보내왔다" 며 "학교가 주 5일 수업을 시작하면 가족이 함께 하는 취미.봉사활동을 하겠다" 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우선 여가활동을 바꾼다. 이틀 내내 TV 보기나 낮잠으로 보내기는 시간이 너무 길다.

가족이 모여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형태로 바뀐다는 것. 동국대 사회학과 조은 교수는 "이틀 연휴를 활용해 직장인의 자기계발 붐이 확산될 것" 이라며 "취미를 즐기더라도 깊숙이 빠져들어 다양한 분야에서 '프로급 아마추어' 들이 쏟아져 나올 것" 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임직원을 근무연한보다 업무성과와 업적으로 평가하려 들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많이 채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가가 늘어나면 소비도 증가한다. 따라서 유통업이 발전하고 문화.교양.교육산업의 신장이 기대된다.

특히 주말 쇼핑과 나들이가 많아지면서 미국과 같이 신문이 평일보다 주말 쇼핑.여행 가이드 판이 더 두꺼워질 것으로 보인다.

주5일 근무는 금요일 오후를 '반공일' 로 만든다. SK생명은 주 5일 근무시대에 맞춰 금요일 정오부터 주말로 인정해 금요일 낮 12시부터 일요일 밤 12시 사이에 사고가 나면 최고 4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개발, 지난해 11월부터 시판하고 있다.

◇ 전산업으로 확산〓현재 국내 1백대 기업 중 주 5일 근무를 하는 곳은 LG칼텍스정유.LG칼텍스가스.모토로라 반도체통신 등 세곳이다.

노동경제연구원의 김환일 박사는 제약업계.외국계 기업을 중심으로 10% 정도가 부분적으로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한 것으로 추산했다.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법제화하면 연말부터 빠르게 확산돼 5년 안에 모든 산업에서 시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계는 전산업이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도입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노동연구원 등에 따르면 업종과 규모를 감안해 파급효과가 큰 공공부문과 실제 근로시간이 짧은 업종.대규모 사업장부터 주 5일 근무가 확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부문 →대기업 →중견기업 →소기업' 또는 '공공부문 →금융.정보통신업 →제조업 →서비스업 →광공업 등 1차산업 순서' 로 시행되리란 예상이다.

◇ 풀어야 할 숙제 많아〓전국경제인연합회 김석중 상무는 "주 5일 근무는 시간외 근무가 많은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켜 일부 업체가 도산할 수도 있다" 며 "기업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계화.자동화에 박차를 가하고 중국.북한 쪽으로 설비를 이전할 경우 되레 고용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다" 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정순희 교수(가정경제학)는 "주 5일 근무 이후 여가 지출비용이 급증해 가계를 압박할 수 있다" 며 "지자체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과 관광.체육시설 등에 대한 투자를 미리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김시래.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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