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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도 'e-세상' 을 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디지털 세상이다. 신세대 사이에선 인터넷 없인 대화가 안 된다. 휴대폰으로도 e-메일을 보내는 세상이다. 온라인으로 채팅하고, 인터넷으로 새해 카드를 보내며, 사이버 세상에서 마음껏 탐험하는 일은 일상 생활이 됐다.

그러나 인터넷은 물론 컴퓨터조차 없어 디지털 세상에서 소외된 이도 적지 않다.정부가 앞장서 저소득층 자녀나 소년·소녀 가장,산골 마을 가정에 인터넷 보급을 서두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소외계층에겐 인터넷이 아직은 먼 얘기다.

이러한 정보 격차는 특히 빈부보다는 지역간 차이가 더 문제다.

#장면 1. 서울 압구정

연말연시 반짝거리는 불빛으로 휘감긴 크리스마스 트리 등 화려하게 단장된 고급 주택가인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방학을 맞은 이지선(경복초등학교 5년)양은 틈만 나면 PC를 켠다.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다뤘기 때문에 이젠 타자연습이나 간단한 게임 정도는 전문가가 됐다. 특히 지난해 하나로통신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받으면서 사이버 세상에 푹 빠졌다.

지선 양은 사이버세상에선 ‘kb005247’(이용자번호 ·ID)로 통한다. 채팅을 할 때는 본명을 말하기도 하지만,ID나 별칭인 ‘클라라’등으로 불린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지선 양은 바로 e-메일을 열어 친구들과 소식을 나눈다.

방학을 맞아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친한 친구들과 나누는 e-메일로 요즘은 무얼 배우는지 다음엔 어디에 놀러갈지 얘기할 수 있다.

방학 과제물도 인터넷으로 하면 식은 죽 먹기다. 사이버 세상에서 정보사냥을 하고 나면 데이터는 물론 사진이나 그림 등 비주얼 자료까지 한아름 얻을 수 있다. 여름 방학 때 인터넷 덕분에 학교에서 칭찬도 받았을 정도다.

지선 양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채팅과 인터넷방송이다. 요즘 자주 들어가는 곳은 ‘해리포터 클럽’.

어머니가 사 주신 책은 벌써 여러 번 읽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출입한 곳이 출판사가 운영하는 채팅 클럽이다.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 채팅하고,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다양한 그림을 통해 다시 즐길 수 있다.신세대 인기 가수들이 24시간 나오는 인터넷 방송을 보는 것도 사이버 세상에선 빼놓지 않는 일과다.

예전의 어른들이 TV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처럼 지영 양은 PC나 인터넷이 생활의 전부가 됐다.

“PC와 인터넷이 너무 즐겁고 편해서 이게 없으면 어쩌나 싶을 정도.”

장래 유명한 화가나 디자이너가 되려고 예술계 중학교에 들어갈 계획인 지선 양에게 인터넷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방학을 맞아 학원에서 실기강의를 듣느라 바쁘지만 인터넷으로도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좋은 내용은 PC에 저장해 두고두고 보기도 한다.

세계적인 미술관 사이트에 들어가 명화를 둘러보거나 학원 ·대학 등 미술교육기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뎃생 ·스케치 등의 온라인 강좌를 참고하기도 한다.

포토샵 ·페인트샵 같은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그림을 그리거나 여러 색깔을 넣어 간단한 디자인을 해보기도 한다.

#장면 2. 강원도 정선

허리까지 눈이 쌓인 강원도 정선군.카지노가 생긴 정선읍내에서도 66㎞나 더 들어가야 있는 산골마을에 북평초등학교 숙암분교가 자리잡고 있다. 전교생이라야 8명이고 교사도 2명이다.드높은 산자락을 배경으로 교실 4개가 있는 단층 건물이 전부다.

이 학교 김수정(5년)양은 PC를 장만해 집에서 마음껏 인터넷을 써보는 게 꿈이다.꿈많고 활달한 성격의 수정 양은 요즘 인터넷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시내에서 가까운 교회를 다니는 수정 양은 얼마전 그 곳에서 고교생 언니가 컴퓨터로 e-메일과 검색엔진을 쓰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 했다.

그래서 언니를 졸라 가끔 PC를 만지기도 했고,최근엔 무료 e-메일과 ID도 갖게 됐다. 좋아하는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인터넷방송으로 처음 봤을 때는 날아갈 듯 기뻤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공부할 때나 잠잘 때 머리 속에 온통 인터넷 생각만 한다. PC를 장만하기도 쉽지 않고, 게다가 산솔 마을까지 초고속 인터넷을 연결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욕심은 내지 않지만·‥.

그나마 다행인게 최근 정부에서 전국 초등학교에 인터넷망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벌이고 있어, 얼마전 수정 양의 학교에도 인터넷PC가 설치됐다.

“인터넷으로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아요.특히 나만의 자료를 컴퓨터에 모아놓고 쓰고 싶은 데.사이버 세상엔 도시나 시골의 차이도 없죠.”

수정 양은 “부모님께서 중학교에 들어가면 PC를 사주신다고 약속했는데 초고속 인터넷도 그때쯤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소원한다.

인터넷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되면 사이버 세상에서 유명한 호텔 요리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게 수정 양의 꿈이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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