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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컬처 뉴 리더] 1. 매니어라야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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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2001년 문화계가 밝았다. 올해에도 뜻밖의 인물과 현상이 등장하며 우리 문화계의 토양을 기름지게 할 것이다.

안으로는 문화의 산업화가 가속화하고, 밖으로는 한국문화의 세계진출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인터넷.디지털의 확산으로 문화의 생산.소비자란 이분법적 경계도 더욱 빠르게 무너질 것으로 전망된다.

급변하는 문화환경의 새로운 징후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을 통해 올 한해의 문화지형도를 예감해 본다.

*** 하고싶은 것은 하고 만다

‘만화 무림의 전설’로 통하는 만화평론가 이명석(32)씨.먹고 사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만다’는 매니어의 원칙을 한 순간도 어겨본 적이 없는 그는 관심 분야가 다양한 현대사회에서는 매니어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만화키드’라기보다는 철이 들대로 든 대학 입학 후 만화에 심취한 그는 1994년 민음사에 잠깐 근무하는 동안 지금은 폐간된 파피루스란 잡지에 세계만화기행을 연재하면서 만화를 알리는 작업에 입문했다.

만화를 읽고 즐기는 단순한 매니어에서 ‘전도사’의 자리로 한발 나아간 셈이다.96년 잡지사 이매진으로 옮겨 잘 무장한 매니어로서의 진면모를 발휘했고,올 초부터는 만화비평사이트 ‘마나마나'를 히트시켰다.

*** 사이트 '마나마나' 돌풍

이 사이트는 만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르는 코스.특히 이 사이트에는 그의 팬클럽이라 할 수 있는 ‘마나마나 클럽’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는데 회원이 6백명을 넘어섰다.

만화가 지망생,비평적으로 만화를 보려는 독자,현역 만화가 등으로 이뤄진 클럽 회원과 일주일에 두세 번은 머리를 맞대고 만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매니어적 야성’을 다지기도 한다.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문화의 백과사전’(98년)‘이명석의 유쾌한 일본 만화 편력기’(99년)를 잇따라 펴낸 그는 현재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만화 사회학’을 강의할 정도로 만화 비평에 관한 한 ‘지존’의 자리를 굳혔다.

기자가 그를 만난 것은 약 1년 만이었다.‘이명석의 유쾌한 일본 만화 편력기’를 펴낸 후로는 처음이었다.대학로 혜화여고 앞에 새로 마련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조심스런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머리가 어깨 너머로 길게 늘어뜨린 것이 인상적이었다.

“머리를 길렀네요.”

“저 한테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대답은 언제나 한 마디였다.1년 사이에 그는 많이 변해 있었다.외모도 그랬지만 전보다 훨씬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그새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상당히 높아졌다.

수입 역시 왠만한 월급쟁이보다 훨씬 높다.그는 지난해 말 ‘사탕발림’이란 사이트를 개설해 만화 평론 뿐 아니라 영화 평론과 인터넷 기획으로까지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만화 매니어가 만화 평론가로,또다시 문화 기획자로 변모하려는 태세다.

그가 요즘 하는 일에는 매니어와 관련된 일이 많다. 한 이동통신회사가 마련한 매니어 사이트에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게임 ·스포츠 등의 분야에 매니어라고 내세우는데 손색이 없을 만큼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다. 이런 일을 하는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그의 미래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매니어란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다. “한 가지 일에 애정이 깊고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가 돼야죠.매니어는 시회적으로 폐쇄적인 한편으론 대중문화에 흠뻑 젖어 지낸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요즘엔 취미가 확대돼서 매니어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일러준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매니어는 상당히 강성(强性)이어야 했다.“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낮에는 생계 수단으로 별도의 일을 하면서 밤에 취미 활동으로 매니어가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 같아요.그런 스타일도 의미가 있지만 기왕 매니어라면 밤낮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죠.”

사실 우리 사회에는 매니어란 용어가 지나치게 넓게 적용되는 감이 없지 않다.취미 생활에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매니어란 표현을 쓴다.그러나 이명석씨는 물론이고 요즘 문화계 관계자들이 말하는 매니어는 여가 생활을 만족시키는 취미 활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온 정신을 하루 종일 한 분야에 쏟는 이들을 말한다.

이처럼 생활 깊숙히 침투한 매니어 문화의 진원지로는 역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꼽혔다.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상상 가능한 모든 취미활동을 돕는 커뮤니티가 형성돼 취미의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자연스레 매니어 집단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국내 매니어들의 경우 집단 성향이 강하고 무척 다양한 장르에 걸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매니어 문화가 비교적 일찍 형성된 영화를 보면 아트 영화나 호러물이 많이 들어오잖아요.저변에 매니어 문화,곧 그들만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이야기죠.이처럼 매니어 문화는 문화의 다양성과 저변확대에 기여하는 바가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선 소설가.교수 등 소위 전문가에 대한 대접에 비해 매니어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 지나치게 소홀하다는 말을 이씨는 잊지 않는다.

그의 만화 입문은 여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 76학번인 그가 만화에 눈을 뜰 무렵엔 ‘소년 중앙’‘새소년’‘어깨동무’등 만화잡지 삼국시대가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을 때였다.

낙동강 강가에 살다 대구로 전학왔던 터라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던 터라 자연스레 만화는 그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잡지로는 욕망을 채우지 못해 놀이터 옆 낡은 목조 건물의 만화방으로 달려갔고,거기서 허영만과 이상무를 만났다.

영웅 이강토가 9회말 낮은 직구를 받아칠 때 울려퍼지던 ‘태양을 향해 던져라’라는 외침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고 한다.

그가 매니어 단계로 접어든 것은 훌쩍 자라고 나서였다.서울대 철학과 재학시절 그는 소위 운동권으로 학교 교지 편집장을 지냈고 총학생회 선전부에서 일하기도 했다.그 쯤 만화를 탐독하는 그에겐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학생 운동에 빠져들면 들수록 정치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란 걸 절감했고,커져만 가던 빈자리를 대중 문화가 채워주더군요.정치 투쟁에서도 대중 문화가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어요.그 중에서도 만화가 가장 유망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저 독신 매니어예요"

출발은 만화 매니어이었지만 결코 만화에 인생 모든 것을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어쩌면 만화를 주요 테마로 잡은 것은 최소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그는 요즘 시나리오나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다.

카메라에도 관심이 생겼고 최근에는 고양이 매니어들의 커뮤티티 ‘묘한 사람들’에 가입하기도 했다.그는 궁극적으로 비평을 넘어 창작, 더 나아가서는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에세이스트가 되었으면 한다.

인터뷰 끝에 자리를 일어서며 한마디 던졌다. “참 나이가 꽤 됐는데 결혼은 안하세요?”“아,아직 모르셨어요? 저 독신 매니어예요.”

신용호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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