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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빛낸 신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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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대머리치료제 프로페시아에서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까지 첨단의학의 꽃은 신약이다.

약의 개발사는 난치병을 격퇴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의료발전사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하나의 신약이 탄생하려면 2억달러라는 엄청난 연구비와 15년의 장구한 세월, 그리고 까다로운 임상시험을 거쳐야만 한다.

1만분의 1 확률로 태어난 신약의 가치는 가위 천문학적이다. 올해 제약시장의 규모만 2천2백억달러(약 2백43조원). 20세기를 뜨겁게 달군 화제의 신약들을 분야별로 살펴본다.

20세기 신약 개발은 호르몬의 발견으로 시작된다. 1902년 영국의 생리학자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위장에서 분비해 췌장을 자극하는 호르몬 세크레틴을 최초로 발견했다.

21년에 당뇨를 치료하는 인슐린 호르몬이, 35년엔 부신피질에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리됐다.

스테로이드는 1898년 합성된 아스피린보다 1백배나 효과가 강력해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가장 강력한 염증억제제다.

부작용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난치성 류머티스 관절염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1970년대에 도입된 에스트로겐은 호르몬제제가 거둔 또하나의 수확. 폐경 여성의 갱년기증후군과 골다공증 치료에 널리 쓰인다.

우리 귀에 익숙한 테라마이신은 50년에 개발된 최초의 광범위 항생제다. '테라' 란 라틴어로 땅을 의미한다.

테라마이신을 개발한 미국의 제약회사 파이저 연구진은 13만여개의 토양 샘플에서 2천만번 이상의 검사를 시행해 흙 속에서 테라마이신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다.

항생제로 죽일 수 있는 세균과 달리 바이러스는 80년대까지만 해도 효과적인 치료제가 없었다.

그러나 필요는 발명을 낳는 법. 역설적이지만 에이즈가 등장하면서 바이러스 치료제가 봇물 터지듯 등장했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B형간염 치료제 제픽스나 독감치료제 리렌자는 모두 에이즈를 연구하는 도중 덤으로 얻은 치료제다.

치명적인 에이즈도 불치병에서 난치병으로 격하됐다. 96년 단백분해효소억제제 크릭시반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크릭시반이 개발되기 이전 에이즈에 걸린 영화배우 록 허드슨은 숨졌지만 이후에 감염된 농구선수 매직 존슨은 혈청검사에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씻은 듯 사라져 정상생활을 하고 있다.

20세기 신약이 거둔 최대의 개가 중 하나는 속쓰림의 극복이다. 단일품목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도 70년대 타가메트, 80년대 잔탁, 90년대 로섹으로 이어지는 위산분비 억제제다.

로섹의 경우 올해 40억달러(약 4조4천억원)나 팔렸다. 최초의 위산분비억제제인 타가메트를 개발한 영국의 블랙은 88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타가메트 이전 위궤양치료는 제산제를 이용해 위산을 중화시켜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타가메트 이후 위산의 분비 자체를 억제함으로써 위궤양 치료를 획기적으로 앞당기게 됐다.

신약개발은 난치병의 극복뿐 아니라 삶의 질 향상에도 크게 기여했다.

97년 등장한 대머리 치료제 프로페시아와 98년 등장한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대표적 사례다.

이 범주엔 행복을 만들어주는 알약이란 뜻으로 이름 붙여진 해피메이커도 있다. 87년 미 식품의약국의 공인을 받은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이 효시.

현재 졸로푸트와 팍실 등 10여종의 해피메이커가 시판 중이다. 병적인 우울증은 물론 친지의 사망과 실직.실연 등 원인이 있는 우울증에도 효과를 발휘한다.

보도블록의 금을 밟지 않고 걸어야 마음이 편한 강박장애, 토할 때까지 먹어대는 폭식증, 대인공포증과 도벽,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과 공황장애에도 효과적이다.

남편과의 불화 끝에 우울증에 시달리다 교통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왕세자비나 아들이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고어 부통령의 아내 티퍼 고어도 프로작 애용자였을 정도.

그러나 신약이 장밋빛 미래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비용이 비싼 것이 문제. 10%의 효과상승을 위해 1백%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충분한 안전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도 흠이다. 획기적 당뇨치료제 레줄린이 간(肝)독성으로, 비만 치료제 펜플루라민이 심장과 폐 독성으로 미 식품의약국의 시판허가를 받은 지 1년도 안돼 중도하차해야 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20세기 신약 개발의 역사>

1902년 : 소화를 돕는 호르몬 세크레틴 발견

1921년 : 당뇨병 치료 호르몬 인슐린 발견

1922년 : 혈액응고제 헤파린 발견

1928년 :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발견

1935년 : 염증매개물질 프로스타글랜딘 발견

1935년 : 감염질환 치료제로 설파제 응용

1942년 : 최초의 항암제 나이트로젠 머스타드 응용

1942년 : 미국의 제약회사 파이저 페니실린 대량 생산 성공

1944년 : 최초의 결핵치료제 스트렙토마이신 개발

1948년 : 차세대 항생제 세팔로스포린 개발

1949년 : 류머티스관절염 치료제로 스테로이드 응용

1952년 : 정신분열병 치료에 클로로프로마진 응용

1952년 : INH의 결핵 치료효과 입증

1967년 : 도파민의 파킨슨병 치료효과 입증

1972년 : 위궤양 치료제 시메티딘 개발

1975년 : 내인성 마약 엔케팔린 발견

1983년 : 장기이식환자의 이식거부 현상을 억제하기 위한 사이클로스포린 합성

1987년 :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 AZT개발

1987년 : 우울증치료제 프로작 시판

1997년 : 대머리 치료제 프로페시아 시판

1998년 :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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