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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게] '사랑' 230만점 사고팔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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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그것은 기적이었다. 쓰임새가 없어보였던 헌 물건들은 다시 생명을 얻었다. 물건들은 자신이 있게 될 새 자리를 찾아가면서 현금을 만들었고 이것은 불우한 이웃에게 희망의 불빛이 됐다. 안 쓰는 물건을 기증받아 판매한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아름다운 가게'(공동대표 박성준.손숙.윤팔병) 이야기다. 아름다운 가게가 17일로 창립 2주년을 맞았다.

◆얼마나 성공했나=2002년 10월 안국점을 개점한 뒤 2년 만에 전국에 29개 매장을 갖췄다. 연말까지 울산.목포.제천 등에 12개 매장을 추가할 예정이다. 재활용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아파트 단위별로 수거활동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아파트'는 쇄도하는 문의로 지금까지의 매월 선정 방식을 매주 단위로 바꿀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지상최대의 벼룩시장'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 3월부터 매달 셋째 토요일 한강시민공원 뚝섬유원지역에서 열리고 있는 '아름다운 나눔장터'는 매회 10만명에 달하는 시민이 몰려 서울의 새로운 명소가 됐다. 현재 전국의 각 매장과 인터넷 매장(생생몰), 움직이는 가게에서 분류.정리.판매 등 자원봉사 중인 활동천사는 1000명이 넘는다. 물건과 매장을 내놓은 기증천사는 5만여명, 이곳에서 물건을 구입한 구매천사는 8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곳에서 유통된 물건은 230만점에 달한다.

◆어떻게 우리 사회를 밝혔나=경기도 안양 김모씨 집에는 피아노곡 '소녀의 기도'가 매일 흘러나온다. 자매를 입양한 김씨는 손가락이 둘밖에 없지만 열심히 연습해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고 싶다는 둘째(6)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름다운 가게에 편지를 썼다. 가게에서 중고 피아노를 선물받은 김씨는 "아이의 얼굴이 몰라보게 환해졌다"며 흐뭇해했다.

아름다운 가게가 지금까지 불우이웃에게 나눠준 돈은 총 4억8610만원. 우선 일년에 두 차례 하는 정기배분을 통해 지금까지 3억800만원이 474명의 개인과 단체에 전달됐다. 또 태풍매미 수재민 돕기, 용천역 피해복구 돕기, 위 스타트 나눔장터 등에 사용한 특별배분액이 1억7810만원이었다.

◆의미와 전망=아름다운 가게는 자원 재활용과 쓰레기 줄이기, 자원봉사와 불우이웃 돕기라는 네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데 성공했다. 각계 인사는 물론 입법부.사법부.정부부처,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모두 90곳의 기관과 단체가 한마음으로 참여한 것도 주요한 요인이다. 유니레버코리아는 2년간 8회에 걸쳐 '아름다운 토요일'행사에 참여했고 2회 이상 참가한 곳도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대우건설 등 7곳에 이른다.

또 지역주민과의 밀착을 통해 자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운동의 새로운 모델을 선보였다. 이는 영국의 옥스팜, 미국의 굿윌과 구세군 등 선진국 자선단체가 이미 선보이긴 했지만 헌 물건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은 우리 사회의 인식을 확 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가게 활동의 구심점인 박원순 아름다운 가게 상임이사는 가게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름다운 가게에는 수많은 활동천사.기증천사.구매천사가 활약하고 계십니다. 우리 주변에 천사가 많아지면 우리 사회가 천국이 되는 게 아닐까요."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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