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분수대] 십자가의 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 성탄절을 맞아 세계에서 두루 주고 받는 인사다.

한 해를 즐겁게 마감하고 새해를 행복하게 맞으라는 인사다. 예수님이 12월 25일 탄생했다는 정확한 기록은 '성경' 엔 없다.

일반적으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태양의 소생을 기원하는 동지(冬至)의 축제가 그리스도의 탄생과 결부된 축일을 성탄절로 보고 있다.

우리 민족도 동짓날 팥죽을 쑤어 서로 나누어 먹으며 어서 해가 다시 살아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 맞을 채비를 했듯 옛 로마에서도 동지 어름에 태양신 새턴을 기리는 사투르날리아라는 축제를 벌였다.

이 기간에는 귀천.성별.연령 구분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어울렸다. 또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들에게, 못 가진 자들도 나름대로 서로서로 선물을 보냈다. 이런 동지의 민속이 3세기께 성탄절과 결부됐다는 것이다.

"여기 하늘이 부끄러운/사나이가 있습니다/우러러 한 톨의 부끄럼 없이 살려다/되레 죄진 사나이가 있습니다//창 밖 눈이 소보옥이 내리는 당신의 밤에/한 자루 촛불을 책상머리에 켜고/십자가의 뜻이 무엇인가를/다시금 외어 봅니다."

시는 재주가 아니라 가슴으로 써야한다던 김용호(金容浩)시인은 시 '기원' 에서 성탄절에 '십자가의 뜻' 을 다시 한번 되뇌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죄를 다 없애려다 현실세계에서 오히려 죄를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사나이' 의 뜻을. 지금 우리도 죄 짓고, 부끄러운 마음들이 많다.

추운 거리 시장판에 시들한 채소 몇 단 놓고 종일 앉아 있는 할머니들도 있고, 집 없어 썰렁한 지하도로 기어드는 노숙자도 있다.

눈 시린 그런 풍경을 지나치며 비싼 술 마시러 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세밑 풍경 속에서도 서로 나눔으로써 부끄러움과 죄를 씻으라고 성탄절은 있는 것이다.

"인류는 위대한 성인들의 사랑과 희생 정신을 외면하고 이념과 물질적 이익을 앞세워 생명을 경시하고 파괴와 갈등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고 대한불교 조계종 서정대 총무원장은 성탄절 축하 메시지를 통해 사랑과 희생 정신을 요구했다.

정치도, 경제도, 종교도, 노동자와 기업인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도 서로서로 나뉘어 제 몫만 외치고 있어 올 세밑은 유난히 춥다.

솔직히 성탄절을 축제로 받아들이기조차 부끄러운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 성탄절은 사랑과 희생의 십자가의 뜻을 곰곰 되새겨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기약할 일이다.

이경철 문화부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