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 파업 타결 들여다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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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통신 노조가 밤샘 협상 끝에 핵심 쟁점 6개항에 합의해 파업을 풀었다. 지난 18일 파업이 시작된 지 5일 만이다.

한통 분규는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노사 협의' 를 주장하는 사측과 '노사 합의' 를 고집하는 노조가 팽팽히 맞섰다.

사측은 잇따라 강경책을 내놓았다. 명동성당에서 농성 중인 조합원에게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시키겠다" 고 밀어붙였다. 21일에는 검찰이 파업 지도부 6명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보통신부 고위 관계자는 초반 강공책에 대해 "한통 파업을 공기업 개혁의 분수령이라고 판단한 청와대가 강경 대처를 주문한 것으로 안다" 고 전했다.

파업 참가율이 저조한 데다 사회 분위기도 노조측에 불리하게 돌아간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

그러나 21일 오후 11시 이계철 사장이 광화문 사옥에 도착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통 관계자는 "20일 노사 합의 번복 이후 명동성당 농성자가 늘어나고 21일에는 민주노총 소속의 서울지하철노조가 연대투쟁을 결의했다" 며 상황이 꼬여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6개 은행 노조가 22일 파업에 들어가기로 하자 한통은 한통 파업이 노동계 전체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협상 타결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李사장은 이동걸 노조위원장과 5시간이 넘는 마라톤 협상 끝에 22일 오전 5시30분 합의서에 서명했다.

합의서는 ▶이번 명예.희망퇴직을 종료하고 향후 명예퇴직은 강제하지 않으며▶인력풀제(대기발령 등으로 인력 감축)의 전면 철회▶한통 민영화에는 노사가 참여하는 특별위원회 구성▶회사 업무 분할.분사(114 안내와 선로 유지.보수 등)는 사전에 구조조정특위에서 충분히 협의한다는 등 6개 항목으로 돼 있다.

노조는 "합의문에 대한 공식 평가는 다음주에 내놓겠다" 고 했지만 대체로 만족하는 표정이다.

노조 교육선전실 관계자는 "무력하다고 비난받던 한통 노조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고 평가했다.

인력풀제를 폐지하고 당초 3천명이 목표였던 인력 감축 규모를 1천1백여명에서 묶었다는 것이다.

민영화와 회사 분할에도 노조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길을 턴 점도 상당한 양보를 얻어낸 것이라고 보고 있다.

회사측은 "노사 합의나 노사 동수의 특위 구성 등 마찰을 빚을 소지가 있는 명시적인 표현이 합의문에서 사라졌다" 며 "노조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 고 밝혔다.

한통은 그러나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할 때 노사가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 사전에 노조측과 협의한다는 조항에 합의함으로써 향후 민영화.구조조정 과정에 노조의 개입을 허용하는 불씨를 안게 됐다.

이철호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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