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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세계의 지붕 자전거 타고 3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영국제 중고 자전거 한 대로 인도 뉴델리에서부터 중국 베이징까지 장장 1만2천 킬로미터를 120일만에 관통한 대한의 늠름한 386청년 이야기다.

평균 고도 해발 4천5백미터가 넘는 '세계의 지붕'티벳,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는 불모의 땅 타클라마칸 사막, 모래 속의 실크로드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비 사막이 저자 신상환(33)이 96년 7월부터 3개월간 돌파한 극한의 코스다.

하루 평균 120킬로미터 주행, 그나마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 구덩이라도 만나면 그 반만 가도 다행이다. 잠은 대충 노숙 아니 좋게 말해 야영이고, 밥은 라면으로 때우다 우연히 민가에서 얻어먹으면 포식하는 날이다.고산병의 고통에 비하면 배고픔은 아무 것도 아니다. 히치하이킹은 꿈도 꿀 수 없다.

자전거에 20킬로그램이 넘는 생활도구를 싣고 가다보니 짐받이가 부러지고,체인이 끊어지고….어느새 모래 구덩이가 보이면 순순히 자전거에서 내려 밀거나 손수레처럼 끌기 시작한다.

게다가 갑작스레 퍼붓는 폭우와 우박, 그리고 모래폭풍들. 반복되는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광포한 자연의 변덕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히 독주(毒酒)를 마셔대던 사람들…. 잊지못할 추억의 얼굴들이다.

도전과 모험의 도정에서 거둔 순박한 인정(人情)을 가슴에 고이 간직한 채, 그는 지금 여행중에 만나 결혼한 일본인 아내와 인도 산티니케탄의 한 대학에서 인도학과 티벳학을 공부중이다.

왜 굳이 자전거로 횡단했을까.만나는 사람들 마다 묻는 질문에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걷는 것보다 빠르기 때문에."

그의 이런 고행 뒤에는 젊은 날의 아린 초상이 새겨 있다. 아주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내다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2년간 옥고를 치른 후, 무언가에 쫓기듯 티벳으로 달려갔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붙들고.

시인을 꿈꾸는 그가 여행전에 말끝마다 찿던 "X팔"이 고행후 "굿(good)"으로 바뀐 것이 작은 변화라면 변화랄 수 있을까. 저자가 직접 찍은 수십점의 아름다운 오지 비경도 아마추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볼거리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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