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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사막 남극을 찾아서](22)세종기지가 좋은 여섯가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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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기지의 밤이 길어지고 있다. 처음 도착할 당시 한밤중에도 손전등 없이 사물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밤이 되면 손전등을 반드시 들고 다녀야 할 만큼 어두워졌다. 하지를 지나면서 밤이 깊어가기 때문이다. 남반구에 있는 세종기지는 북반구에 있는 한국과 절기가 정반대다.

밤이 길어지면서 대원들끼리 모여 담소를 나누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은 세상과 격리됐다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대원들끼리 세종기지가 좋은 이유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다.

대원들이 내놓은 세종기지가 좋은 점은 생각보다 많았다.

우선 보통 사람들이 평생 오기 어려운 곳에 올 수 있어서 좋다고 대원들은 입을 모았다. 세종기지를 방문한 인원은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지만 많아야 1000명 남짓의 한국인이 이곳을 다녀갔다. 세종기지가 설립된 이후 기지에서 1년을 보낸 월동대원은 모두 400명 수준이다. 각 차수별 월동대원을 20명씩 어림잡아 23차를 곱해도 46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초기에는 월동대원들이 10명 남짓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400명 정도로 추산해도 무리가 없다. 세종기지를 찾는 과학자들도 400명을 넘지 않는다. 한국에서 극지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수가 한정돼 있고 한번 방문한 이들이 다시 방문하기 때문이다. 월동대원들과 과학자들을 모두 합해도 많아야 800명 수준이다. 여기에 취재를 위해 세종기지를 방문한 기자들과 남극 체험자들, 기지 설립 당시 공사를 위해 들어온 이들도 200명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월동대원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무척이나 강하다.

세종기지의 또 다른 매력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이다. 남극에는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이 전혀 없다. 남극 환경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남미와 호주 아프리카에도 산업시설이 많지 않다. 공장이 밀집된 중국, 미국, 인도 등 북반구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세종기지에서 사용되고 남은 비닐이나 폐자재 등도 모두 칠레 푼타아레나스로 반출된다. 주변에 오염배출원이 없으니 당연히 공기도 깨끗하다. 실제 세종기지에서 마시는 공기는 서울의 답답한 공기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마시는 공기와 비슷하다.

세종기지는 모든 것이 공짜다. 정부는 남극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세종기지를 설립했다. 때문에 기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정부가 부담한다. 세종기지에서는 먹고 자는데 필요한 것들을 모두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심지어 생활에 필요한 칫솔, 치약, 비누, 삼푸 등의 개인 생활용품도 무료다. 월동대원들의 경우 작업복을 비롯해 방한복도 지급 받는다. 비용을 들이지 않고 여가생활도 즐길 수 있다. 눈이 많이 내린 뒤 휴일에는 스키를 매고 기지 뒷산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기지에 있는 당구장, 탁구장, 헬스클럽도 근무 시간만 아니면 언제든지 무료다. 가끔 연구를 위해 물고기가 필요할 때는 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출퇴근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점도 세종기지의 장점이다. 대원들의 숙소와 근무장소 간의 거리는 30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가장 먼 곳도 300미터가 되지 않는다. 출퇴근에 평균 각각 1시간 이상을 사용하는 서울에 비교하면 천국이다. 서울의 경우 맞벌이가 많고 이른 출근을 위해 아침을 거르는 이들이 많지만 세종기지에서는 따뜻한 밥과 국을 아침마다 먹을 수 있다. 기지 내 식당인 세종회관에는 한식, 일식, 양식 자격증을 가진 주방장이 요리를 담당하고 있다. 세종기지의 출근시간은 오전 8시로 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

세종기지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머리와 수염 등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스타일로 자신을 꾸밀 수 있다는 점이다. 머리를 기르고 싶은 대원은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닌다. 반대로 머리를 빡빡 밀어 스님처럼 단정(?)하게 하고 다니는 대원들도 있다. 수염을 기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각자의 개성대로 하고 다녀도 어느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세종기지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금연할 수 있다.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담배를 살 수가 없을 뿐이다. 어렸을 때 호기심으로 말아 피운 호박잎 담배도 구할 수 없다. 실외에서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남극이다. 결국 다른 대원들에게 구걸(?)을 해야 한다. 다른 대원도 필요한 양만큼만 담배를 가져온다. 때문에 자주 손을 내밀 수 없다. 담배가 떨어지면 끊는 수밖에 없다. 담배를 끊겠다는 각오로 담배를 가져오지 않은 대원들은 세종기지에 머무르는 동안은 금연에 성공한다.

박지환 자유기고가 jihwan_p@yahoo.co.kr

*박지환씨는 헤럴드경제, 이데일리 등에서 기자를 했었으며,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에 ‘박지환 기자의 과학 뉴스 따라잡기’를 연재했었다. 지난 2007년에는 북극을 다녀와 '북극곰도 모르는 북극 이야기'를 출간했다. 조인스닷컴은 2010년 2월까지 박씨의 남극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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