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표정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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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시청역 지하도, 레코드 가게앞을 지나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를 듣는다.

이태수 시 '성탄의 눈' 을 떠올린다.

"눈은 내려서/우리 앞에 우리의 모습으로/내려오신 하느님, /아기 예수의 이마와/그앞에서 조아리며 조배하는 가슴마다 불을 달아주고/…/헐벗고 버림받고 병든/우리 이웃들의 영혼 깊숙이/구원의 빛과 소금, 사랑의 말씀들을/가득가득 안겨다 주고, 채워주고/…/온 누리를 붐비며/우리의 슬픔에 날개를 달아주고, /가난한 꿈도/하늘 끝까지 밀어올려주기도 하고"

이 시처럼, 빙 크로스비의 따스하고 평화로운 음성처럼 세상이 이뤄질 수는 없을까. 행인들은 캐럴에 아랑곳없이 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하지만 저마다 마음속으로는 자기 몫의 추억과 희망을 떠올리고 있었으리라. 표정을 잘 노출시키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습일 뿐 어찌 성탄절의 감흥이 없을까.

이제 사흘만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백화점과 호텔, 시청앞 광장에서 용인 에버랜드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트리가 환하게 밤을 밝히고 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선물을 주고 받고, 젊은이들은 많이, 나이든 사람들도 조금은 들뜨는 시기다. 시장과 백화점은 저마다 커다란 세일 현수막을 붙여놓고 행인들을 유혹한다.

무얼 선물할까하고 가게를 둘러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그래도 즐겁다. 조금 소박한 선물이라도 마음을 담아서 하면 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서로 믿고 사랑을 나누면 되지 않겠는가.

식탁위에 따스한 촛불을 켜놓고 가족들이 모여앉아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창가에 세워둔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꼬마전구들이 반짝 반짝하고 윙크한다.

전나무 가지에 매단 하얀 솜과 금빛 방울이 축제처럼 가볍다. 창틀에는 커다란 양말을 두개나 매달아 놓았다.

선물을 기다리며 들떠있는 아이들과 즐겁고 평화로운 부부. 잠시 크리스마스 전야의 어느 행복한 집안 풍경을 상상해보다 현실로 돌아온다.

경제는 최악이고 지하도마다 노숙자들이 눈에 띈다. 결식아동이나 소년소녀 가장들이, 무의탁 노인들이, 실직자들이 누추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다행인 것은 온정이 아주 마르지는 않았다는 것. 올해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액은 목표치 15억원을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작은 액수, 작은 징표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들이 많아졌다는 희망의 징표로 읽힌다.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났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하늘나라로 돌아간 예수님께서 아시면 마음아픔이 덜 하셨을까.

"잠든 아이의 머리맡엔 새로 산/신발 한 켤레, 제 안의 어둠을 껴안고/어디론가 가고 싶은 털신 한 켤레" (손택수의 시 '성탄전야' 중에서)처럼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가난한 털신들이 줄어든다면.

이해인 수녀님의 '크리스마스 마음-성탄' 을 읽으며 한해 내내 성탄같은 온정이 계속되기를 기원해 본다.

"예수님을 불러본다/남몰래 친해 둔/별을 부르듯이/예수님을 부르는 마음/그 분과 함께 사는 마음은/언제나 크리스마스 마음이지/12월이 아니라도"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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