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왕따 당한 정치 모범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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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가 19일 평당원 신분으로 돌아갔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4.13 총선을 앞두고 집권당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徐대표를 영입한 지 11개월 만이다.

이날 민주당사 3층 대표실을 떠나면서 그는 "후회도 없고 섭섭함도 없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는 말을 남겼다.

전날 장태완(張泰玩)최고위원과 언쟁을 벌일 때의 노기 띤 모습과 달리 잔잔한 미소와 담담함, 그리고 씁쓸함이 교차했다.

그가 사족처럼 단 '나로서는' 이란 표현은 당직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듯했다. 그의 정치실험 결과가 이 말 속에 담겨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흥사단.신사회공동선연합 등 원로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여든살(1920년생)의 나이에 늦깎이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모범생 정치인' 의 모습을 보이려 했다.

그가 회고하듯 다른 최고위원.당직자들이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결근해도 공식 회의에 결석이나 지각한 일이 없다.

지난 12일 구로시장을 방문한 그의 지갑 속의 단돈 2천원이 화제가 됐을 정도로 이권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대표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총선 때 산골 구석까지 돌며 유세를 다닌 것" 이라고 말할 만큼 그는 늦게 경험하는 정치를 즐긴 적도 있다.

그러나 그가 접한 '현실정치' 의 벽은 두터웠다. 지난 1월 21일 민주당사에 처음 출근했을 때 그의 일성(一聲)은 "어떠한 당내 계보도 인정하지 않겠다" 였다.

하지만 그의 퇴진은 동교동계 내분에서 비롯된 당내 갈등과 그로 인한 민심이반 때문이었다.

민주당 사람들은 '시민단체 출신의 모범생 대표' 보다 대통령과 가까운 '측근 실세' 들을 더 따랐다.

세(勢)도 없고 카리스마도 없는 고령의 고용대표가 국회에서 흘린 코피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보다는 "리더십 없는 대표 때문에 당이 무기력해지고 있다" 는 사람이 많았다.

그랬던 민주당을 향해 徐전대표는 "자유인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며 이런 말을 던졌다.

"정치란 큰 제사를 지내듯 하고 생선 굽듯이 해야 한다. 언제나 국민의 마음을 읽고, 받들고, 공경해야 한다."

박승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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