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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핫뉴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러브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CCTV 촬영된 내 집에 숨어 사는 여자 섬뜩해’. 2009년 기축년 (己丑年), 조인스닷컴에서 네티즌이 가장 많이 본 뉴스입니다. 지난해 12월 10일 게재된 기사인데요. 모두 126만6000여명(순독자 기준)이 클릭했습니다. 한 네티즌이 자신의 집에서 자꾸 음식이 없어져 CCTV를 확인한 결과 노숙자 여성이 몰래 살고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조인스닷컴은 12일부터 14일 설 연휴기간 동안 분야별로 나눠 화제가 됐던 이슈들을 되짚어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첫날로, 정치ㆍ사회 부분을 정리했습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러브스토리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서거했습니다. 한달 뒤 결혼정보업체 ‘선우’ 이웅진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의 ‘러브스토리’ 편지와 사진 등을 공개했는데요.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를 “알면서도 딴청부리는, 딱 제 타입의 여자”라고 회상했습니다. “토담집에서 공부할 때 덮고 잘 담요를 집에서 갖고 나와 양숙씨를 만나 논둑길을 걸었는데 ‘무현이랑 양숙이랑 담요를 갖고 다니며 연애한다’는 소문이 퍼졌었다”는 노 전 대통령의 에피소드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난 9일 권양숙 여사는 노 전 대통령 공식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에 올린 새해 인사말에서 “이제 대통령님은 안 계셔도 여러분이 대신 힘을 모아 함께 하면서 우리 홈페이지와 노무현재단, 봉하재단을 두루 지켜줘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든든하다. 고마울 따름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 이웅진 대표는 지난 2002년 가을 한 사무실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대선후보 노무현이었다. 이 대표는 노 후보와 일면식도 없었다. 당시 이 대표는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미연방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로버트 김의 기사를 읽고 인간적인 연민을 느껴 그의 후원 활동을 하고 있었다. 노 후보는 ‘좋은 일에 힘써줘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 대표를 격려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이것도 인연이니 노 후보의 결혼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했다. 며칠 뒤 노 후보는 약속을 지켰다. 자신의 비서를 통해 부부 사진 석 장과 부인 권양숙과의 러브스토리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노무현 후보는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노 대통령은 2005년 7월, 로버트김의 석방과 관련해 힘써준 후원회 지인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노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결혼 사업은 잘 되고 있느냐”고 물었고 이 대표는 “대통령님 덕분에 잘 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이것이 이 대표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었다.

이 대표는 1일 “노 전 대통령은 살아생전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많은 모습을 보여줬고 최근 공개된 아내의 환갑 선물을 주는 사진은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며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 분과의 추억을 떠올리던 와중 그 분이 주신 글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를 “알면서도 딴청부리는, 딱 제 타입의 여자”라고 회상했다. “늦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유난히도 아름다웠고…동화 속 세상에서 아내는 곧 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이야기하곤 했다”고도 떠올렸다. 연애 시절 때의 에피소드를 전하며 “토담집에서 공부할 때 덮고 잘 담요를 집에서 갖고 나와 양숙씨를 만나 둑길을 걸었는데 그 모습을 누가 봤는지 ‘무현이랑 양숙이랑 담요를 갖고 다니며 연애한다’는 소문이 퍼졌었다”고 쑥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는 “2년 가까이 커피 값 한푼 안들이고 순전히 맨 입으로 연애를 했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며 “고상한 문학소녀가 나의 주인이 됐다. 결혼 후 양숙씨는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훈육주임 선생님을 닮았다고나 할까”라며 애교 섞인 투정을 덧붙였다. 그러나 “아내에게 이런저런 구박(?)을 받다 보면 아내가 마귀할멈처럼 미워지다가도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결혼은 둘이 함께 기와집을 지어가는 과정”이라며 “상대방이 내 입맛대로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바꿀 것이 있다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바꿔야한다는 자세를 가진다면 행복한 결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노무현 대선후보가 남긴 부인 권양숙과의 결혼 스토리를 선우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지은 기자, 사진제공:선우

[이하 전문]

“결혼은 둘이 함께 기와집을 지어가는 과정입니다”

◇‘알면서도 딴청부리는 그녀. 딱 제 타입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경남 진영의 한 마을에서 같이 자랐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두었던 그녀를 제대 후 고시공부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빌려주고 받는 평범한 사이였다가 나중에는 읽은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눌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한 내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시침을 뚝 떼고 딴청을 부리다가 근 1년이 다 되어서야 마음을 열었습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지적이고 자존심 강한 여성을 좋아했는데, 아내는 그런 저의 이상형에 딱 맞는 사람입니다.

고상한 문학소녀가 나의 주인이 되어버린 사연. 하지만 동전의 앞뒷면처럼 모든 것도 마찬가지인 것같습니다. 이상형과의 결혼생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더군요. 나는 아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고상하고 품위있는(?) 여성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나의 주인이 되어버렸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결혼 전 내가 마음 졸이며 사모하던 처녀 양숙씨가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훈육주임 선생님을 닮았다고나 할까...

◇‘늦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도 우린 소박하지만 남들이 흔히 갖기 어려운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몇 킬로나 되는 둑길을 걸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늦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유난히도 아름다웠고, 논길을 걷노라면 벼이삭에 맺힌 이슬이 달빛에 반사되어 들판 가득히 은구슬을 뿌려놓은 것같았습니다. 동화 속 세상같은 그 속에서 아내는 곧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동네 앞 들판 건너 산기슭 토담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 덮고 잘 담요를 집에서 갖고 나왔습니다. 그 때 양숙씨를 만나 그 둑길을 어김없이 함께 걸었는데, 그 모습을 누가 보았던지 “무현이랑 양숙이랑 담요를 갖고 다니며 연애한다”는 소문이 퍼져 변명 한마디 못하고 망신을 당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2년 가까이 커피값 한푼 안들이고 순전히 맨입으로 연애를 했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이런저런 구박(?)을 받다보면 아내가 마귀할멈처럼 미워지다가도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흐뭇해집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가치관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결혼할 때 양가의 반대가 심한 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던 때라 처가에서는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이유였고, 저희 쪽에서는 시험 합격을 자신하고 있어서 더 좋은 조건의 혼처를 구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이상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에 조건을 안따질래야 안따질 수 없습니다. 저는 성격과 가치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부는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다르다면 결혼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왕자와 공주가 되기 전에 신하와 시녀가 되자. 가끔 결혼식 주례를 설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큰 기와집을 짓지 마십시오. 그렇다도 불안해하지도 마십시오. 30년 쯤 인생을 더 산 선배로서 내게 결혼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냥 ‘신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혼은 쉽게 말해 둘이 함께 기와집을 지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내 입맛대로 될 것이라 기대하게 마련입니다. 남자의 경우는 ‘내가 왕자가 되고 상대는 시녀가 될 것’을, 여자는 반대로 ‘내가 공주가 되고 상대가 하인이 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사람 중 한사람이 왕자고 또 한사람이 공주라면 그 집에는 시녀도, 하인도 없습니다.

왕자도, 공주도 아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줄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혹시 상대를 시녀나 하인으로 착각해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바꿀 것이 있다면 상대가 아니라 내가 바꿔야한다는 자세를 가진다면 행복한 결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인생을 끝없이 개척하고 도전해온 사람입니다. 고졸 학력으로 독학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정치풍토 개선을 위해 여러 역품에 도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결혼을 포함한 내 인생의 7할은 운명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에서는 운명적인 요소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제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그래도 뜻대로 안되는 것이 있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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