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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 연방대법원의 플로리다주 개표 결과 인정 결정으로 제43대 미 합중국 대통령에 사실상 당선한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는 이번 대선 개표과정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은 인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상원의원이었고 아버지가 제41대 미 대통령인, 정치적으로 매우 화려한 가문 출신이다.

그러나 4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그가 오늘날 전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리에 오르리라곤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공부도 못 했고 술.파티.연애로 젊은날을 보낸 그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는 2류 사업가로 살아갈 것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다.

부시는 1946년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나 두살 때부터 텍사스 미들랜드에서 자랐다. 아버지인 조지 부시가 그곳에서 석유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야구부에 들어갔지만 운동보다 친구들 사귀는 데 더욱 재미를 느꼈다. 이후 미국의 정치인.사업가 양성소인 필립스 엔도버 고등학교와 예일대를 나왔지만 성적과 무관하게 아버지가 이 학교 출신의 유력인사여서 입학이 허락된 것이었다.

5남매의 장남인 그는 아버지가 지나간 길을 그대로 따라갔지만 늘 집안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 아버지는 20세에 결혼한 데 비해 그는 20세에 행실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파혼당했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훈장까지 받았다.

반면 아들 부시는 베트남전 때 군에 입대했다가 훈련성적이 좋지 않아 전쟁은 구경도 하지 못한 채 주방위군 근무만 했다.

31세엔 하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했고 20대 중반부터 손댄 석유사업에서도 잇따라 실패하며 알콜중독 증세까지 보였다.

이토록 보잘것없던 그가 새 사람으로 태어난 건 40세 때인 86년 7월 어느날이었다. 그는 전날 밤 잔치에서 흥건히 마신 술기운이 가시기도 전에 느닷없이 주위 사람들에게 술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왜 뒤늦게 철이 났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르지만 그는 문 닫기 직전이던 회사를 거대 석유회사 하켄에 넘기며 30만달러 상당의 주식을 얻었다.

88년엔 아버지의 대선캠프에 참가해 정치적 경험을 쌓았고, 이듬해엔 파산 직전의 텍사스 레인저스 프로야구단에 60만달러를 투자하며 운영권을 따냈다.

그는 94년 야구단 지분을 팔아 1천5백만달러를 가진 재산가가 된 뒤 텍사스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당선했다. 그리고 교육환경 개선과 청소년범죄 예방 등의 업적을 쌓았다.

98년 그가 주지사로 재선되자 마땅한 대표주자가 없었던 공화당은 그를 차기 대선 후보로 점찍고 고사하던 그를 설득했다.

선거운동 중에 그는 숱하게 말 실수를 했다. 24년 전 음주운전을 하다 체포된 적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한때 마약에 손댔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결국 이번 선거가 법정에서 마무리돼 '아버지 덕으로 살아간다' 는 꼬리표에다 '법원이 만들어준 대통령' 이란 말이 따라붙게 됐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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