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단상선 싸우고 의석은 비고 … 대정부질문 ‘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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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4일부터 닷새간 계속된 대정부 질문에선 이런 모습이 하루도 빠짐없이 목격됐다. 질문대에 선 의원들도 발언이 끝나면 부리나케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의원 수보다 방청객 수가 서너 배 이상 많은 경우도 허다했다. 그걸 보다 못한 김형오 국회의장은 5일 “자리에 있는 의원 이름을 속기록에 적으라”고 지시했다. 의장이 학교의 담임교사처럼 출석을 체크하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대정부 질문의 수준도 문제였다. 의원들은 친이계와 친박계, 여야로 갈려 세종시 문제로 난타전을 벌였다. 김정훈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당 소속 의원들에게 “세종시 말고 다른 것도 질의하라”는 부탁까지 했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남유럽발(發) 재정위기나 실업자 400만 명 육박 등과 같은 중요한 문제는 아예 실종되다시피 했다. 노동부·환경부 장관은 10일 본회의장에 하루 종일 앉아 있기만 했을 뿐 아무런 질문도 받지 못했다. 모든 게 ‘세종시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버린 듯한 모양새였다. 이 때문에 ‘대정부 질문 무용론’은 확산됐다. “의원들이 참여하지도 않고 일방적 정쟁의 도구로 쓰인다면 대정부 질문을 폐지하는 게 옳다”는 말이 국회의장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한나라당 김세연 의원은 10일 대정부 질문에서 세종시 문제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는 “대정부 질문 때가 아니면 내가 맡은 상임위(교육과학위) 소관이 아닌 부처의 업무에 대해 제대로 물을 기회가 없다”며 행정안전위 소관인 지방행정체제 개편 문제 등을 차분하게 물었다. 많은 의원이 세종시와 관련한 정쟁성 발언으로 시간을 허비해 버린 상황에서 18대 국회 최연소(38세)인 김 의원은 대정부 질문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돼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허진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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