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어음부도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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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전자금융거래 확산으로 어음 사용이 빠르게 줄면서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어음부도율이 기업 자금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어음부도율은 매달 부도난 어음금액을 해당 월의 어음교환액으로 나눈 수치다. 과거엔 대부분 금융거래를 어음이나 당좌수표로 했기 때문에 어음부도율이 기업 자금사정을 잘 반영했다.

그러나 1995년 한은 금융공동망 구축으로 그동안 어음이나 당좌수표로 하던 거래의 상당부분이 전자금융으로 대체되면서 통계에 허점이 생겼다.

전자금융거래의 확산으로 어음부도율의 분모인 어음교환액이 줄어들자 부도어음이 늘지 않았는데도 부도율이 높아지는 통계적 착시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한은은 고심 끝에 통계의 연속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어음부도율 분모에 전자금융으로 이뤄진 거래액수까지 포함시켰다. 그러자 이번엔 부도어음이 줄지 않았는데도 부도율이 저절로 떨어지는 '역' 착시현상이 나타났다. 어음거래는 돈이 없어도 일단 어음을 끊어준 뒤 나중에 부도를 낼 수 있지만 전자거래는 당장 돈이 없으면 거래가 안 된다.

따라서 전자금융거래 통계에선 분자에 들어가는 부도어음이 생길 수 없는 반면 전자금융거래가 늘수록 분모는 커져 부도율이 저절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문석호 의원은 지난 13일 한은 국정감사에서 "어음부도율 통계는 시장의 거래관행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통계"라며 "중소기업 자금사정을 잘 반영할 새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이에 대해 "어음부도율이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전자금융거래분을 뺀 통계도 함께 발표하고 있다"며 "어음부도율 통계 자체가 전 세계에서 우리만 쓰고 있는 것이어서 대체 지표를 강구 중"이라고 해명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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