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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세종시, 국회 토론 후 표결이 정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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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종시 문제가 계속 미로(迷路)를 헤매고 있다. 원안(原案)과 신안(新案) 사이의 골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다. 국회 대정부질문은 여야 간, 그리고 여당 내 주류·비주류 간 정쟁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기형적인 정치공세로 바뀌어 야당이 총리해임건의를 추진하는 데에 이르렀다. 원안이냐 신안이냐에 앞서 이를 결정하는 방법론을 놓고도 혼란이 많다. 한나라당 주류에서는 국민투표 주장이 갈수록 늘고 있다. 야당과 한나라당 비주류가 반발하는 가운데 정부는 “공식적인 검토는 없다”는 입장이다.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은 신안 발표(지난달 11일) 이후 처음으로 충청에 내려가 신안의 효용성을 강조했다.

문제가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정도(正道)로 가야 한다. 세종시 신안은 기존의 세종시법을 수정하는 개정 입법이며 이미 정부가 입법 예고했다. 그렇다면 절차에 따라 정부는 법안을 제출하고 국회는 의견수렴-토론-표결이라는 정해진 궤도를 밟아나가면 된다. 이런 절차를 외면하고 국민투표부터 내세우는 건 순서가 잘못됐다. 그리고 여권 비주류 일각이나 야당에서 ‘정부의 신안 포기’를 고집하는 것도 옳지 않다.

국민투표 자체도 찬반 논란이 많다. 대통령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것은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주요 사항’(헌법 72조)인데 이를 둘러싼 해석부터가 엇갈린다. 수도분할이 ‘국가안위’에 해당된다거니 안 된다거니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입법한 사안을 다시 국민에게 묻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훼손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국민투표는 더 큰 새로운 논란을 부를 소지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론은 압도적으로 국민투표를 선호한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권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우리 정치의 수준으로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여야는 이러한 국민들의 정치 불신, 정치 실망감부터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사실 여야는 지금까지 찬반을 둘러싼 일방적 주장과 싸움만 벌여 왔을 뿐이다. 양쪽 안을 올려놓고 이성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토론다운 토론은 한 번도 없었다. 토론을 해야 어느 안이 좋은지 윤곽이 드러날 게 아닌가. 그리고 토론-표결이라는 정도로 가야 결과가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 결론이 어느 쪽으로 나든 세종시 갈등은 남을 것이다. 그러나 토론-표결의 과정을 거치면 한국 사회는 분열 속에서도 건질 게 있다. 문제가 무엇이었으며 누가 어떻게 판단했고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이라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갈등의 파편 속에서 더 건져내기 위해 더 제대로 토론해야 한다. 한나라당 주류·비주류는 끝장 토론을 벌이라.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와 야당대표들을 만나 ‘최후의 토론’을 벌이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래야만 한국 사회에 남는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