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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의 겨울 스케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8면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검은 풍경 속에서 냇물은 하얀 모습으로 뻗어 있었고 그 하얀 모습의 끝은 안개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김승옥의 '무진(霧津)기행'-

*** 늦가을~초겨울 갈대 나라

강물이 흐르고 잔디로 덮힌 방죽이 시오리밖 바닷가까지 뻗어나가는 전남 순천시 대대동 대대포구. 멀리까지 바닷물이 빠져나간 빈자리에는 시커먼 갯벌이 속살을 드러낸다.

1백60여만평 넓은 습지에는 바람에 몸을 맡긴 갈대가 햇빛을 머금은 채 너울 너울 춤을 춘다. 안개대신 초겨울의 서정이 듬뿍 묻어난다.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절정을 이루는 순천만 갈대밭은 울긋불긋한 가을 단풍이나 화사한 봄의 벚꽃보다 더 찬란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철새의 노래와 함께 펼쳐지는 '갈색 추억' 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한다.

갈대밭은 순천시 시내를 관통하는 동천과 남서쪽을 감싸안고 흐르는 이사천이 합류해 순천만으로 흘러들어가는 양안에 형성돼 있다.

순천만 갈대밭은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 1997년 3월 중순 전남 동부지역 사회연구소 초청으로 내한한 조류탐사가 닐 모리스와 미우라 타다오는 "전세계 습지 1백여곳을 돌아보았지만 여러 종의 희귀한 철새가 한꺼번에 많이 모여든 곳은 처음" 이라며 "갈대와 갯벌이 원형대로 보존돼 철새들의 먹이가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생물종(種)의 다양성은 그 지역의 환경, 나아가서 지구의 건강과 직결된다. 열대우림과 함께 중요하게 여기는 갈대밭은 '자연의 콩팥' 으로 뛰어난 정화능력을 가졌다.

그동안 우리는 무분별한 간척사업으로 수많은 갯벌을 잃었다. 그러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이제는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갯벌살리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 150여종 철새들 보금자리

순천시청 양효명 공보계장은 "순천만은 국내 대표적인 흑두루미 도래지로 겨울이면 1백50여종의 철새가 날아온다" 며 "특히 계절에 따라 일곱가지로 색이 바뀌는 붉은 색의 칠면초가 자랑거리" 라고 말한다.

순천시 홈페이지(http://www.sunchon.chonnam.kr)를 통해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갈대밭과 갯벌을 배경으로 가장 사진찍기 좋은 곳은 순천만가든(061-741-4489) 앞이다.

아침과 저녁에는 어느 곳에 앵글을 맞춰도 누구나 작품 하나는 건질 수 있어 많은 사진 동호회원들이 찾아온다.

김종권(사진여행 단장)씨는 "갯벌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물때를 잘 맞춰야 한다. 갈대밭은 대대동, 갯벌은 별량면의 장산리 우명마을과 마산리 청산마을이 유명하다.

특히 갯벌 사진을 찍을 때는 자외선을 막아주는 PL휠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순천만의 겨울은 꼬막철이다. 청산마을에 들어서면 뻘판을 타고 마을앞 갯벌로 꼬막을 주우러 가는 아낙들의 모습을 앵글에 쉽게 담을 수 있다.

속이 실하게 꽉 찬 꼬막을 자루에 가득 담아 뻘판을 밀며 마을로 돌아오는 아낙들의 모습에서 강한 생활력을 엿볼 수 있다.

*** 전국 최대의 꼬막 생산지

40여년간 꼬막을 주웠다는 예순의 정정자씨는 "마을앞 뻘밭은 우리네 생활터전이지라. 1백20~30㎏의 꼬막을 실은 뻘판을 밀고 나올 때는 허리가 부러지는 것같고 다리에 힘이 쫙 빠진당게. 그래도 이 짓을 해 4남매를 핵교까지 보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요" 라며 지나온 옛일을 회상한다.

1백9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마산리는 전국 최대의 꼬막을 생산한다. 오리 등 철새들이 물빠진 갯벌에 앉아 꼬막을 잡아먹는 것을 막기 위해 곳곳에서 위장대포를 터뜨린다. 참꼬막은 자연산이고 털꼬막은 양식을 한다. 20㎏이 참꼬막 8만원, 털꼬막이 3만원에 거래된다.

수십명의 마을 아낙들이 뻘스키를 타고 갯벌로 나가는 장면은 장관이다. 매달 음력 그믐과 보름 때 낮 1시경이 가장 좋은 물때로 시간만 맞춰가면 쉽게 볼 수 있다.

우명마을은 언덕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뛰어나다. 길가에 있는 해돋이 가든이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다.

글.사진〓김세준 기자

<여행쪽지>

순천시에는 송광사와 선암사, 낙안읍성, 고인돌공원이 대표적인 관광지다. 송광사는 조계종을 대표하며 선암사는 차(茶)로 유명한 고찰이다.

낙안읍성(순천시 낙안면.061-749-3347)은 1천3백84m에 이르는 성이 장방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옛읍성. 지금도 1백8세대가 생활하고 있어 살아있는 민속마을이다.

조상들의 살아왔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제주 성읍 민속마을이나 용인 민속촌과 달리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성안에는 낙안 객사와 해자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 되어 있고 옹성.낙풍루.쌍천루 등이 복원돼었다. 전통가옥 아홉채도 우리의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입장료 1천1백원.

주암호 주변에는 고인돌공원(순천시 송광면.755-8363)이 있다.

주암댐 수몰지역서 발굴한 수백기의 고인돌을 모아 놓은 전국 최초의 고인돌공원. 지석묘 하부에 있던 석실들도 함께 복원돼 있어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일 뿐 아니라 고대사를 배우는 소중한 배움터다.

가족나들이 장소로도 제격. 입장료 5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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