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서울대의 '엄정화 반대' 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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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대가 일부 학생들의 '엄정화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1백여 대학생이 지난달 29일부터 대학본부 3층을 점거, 농성 중이다.

'엄정화' 는 학사경고 4회를 받으면 자동 제적토록 규정한 '학사관리 엄정화 방안' 의 줄인 말이다.

99학번부터 적용돼 지난 1학기까지 3학기 동안 학사경고를 연속 3회 받은 학생이 1백61명이다.

2회 경고자는 3백42명이나 된다. 이번 2학기가 끝나면 무더기 제적사태가 예상된다.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일부 학생은 "학점 평균이 2.0(4.3점 만점)에 미치지 못하면 졸업할 수 없다는 학칙이 있는데, 별도로 '4진 아웃제' 를 만든 것은 비교육적 처사" 라고 주장한다.

한 학생은 농성 학생들 앞에서 "공부할 권리 못지않게 공부하지 않을 자유와 권리도 있다" 는 소신을 큰 소리로 외친다.

학교측은 학사경고 기준을 현행 2.0에서 1.7로 낮추거나 횟수를 6회로 늘리는 것은 검토할 수 있지만 학사제적제를 아예 없앨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김안중(金安重)학생처장은 "서울대 졸업장이 출세의 보증서가 되던 시대는 끝났다" 며 "세계의 대학생들과 무한경쟁을 벌여야 할 서울대생들이 교육의 내실화 방안에 반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사정은 다르지만, 2학기 들어 수업을 거부해온 의대생들도 유급 결의에 따른 신입생 선발 동결 및 2학기 등록금 보전 등 요구를 담은 질의서를 지난달 25일 총장에게 전달했다.

자체 유급과 학사경고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 학생은 참의료와 참교육 실현을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그러나 속내는 공부를 안했어도 졸업장은 받고싶 다는 것이 아닐까. 학사경고제의 기준점수인 2.0을 1백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60점대 후반이다.

출석만 제대로 해도 감안되는 기본적인 점수다. 학생들 주장대로 누군가 2.0 이하를 받아야만 하는 상대평가 방식이 문제라면 기준 횟수를 6회로 늘리는 방안을 두고 대학측과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는 게 순리다. '입학=졸업' 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대학도 고민해야 한다. 교육전문가들은 "우수한 학생들이 낙제생이 됐다면 학생의 질 관리 시스템과 면학 분위기 조성에 문제는 없는지 대학 스스로 체크해야 한다" 고 지적한다.

서울대는 한국 지성의 전당이자 지식정보화 시대를 헤쳐나갈 조타수를 양성하는 곳이고,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부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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