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만 터지면…" '대박족'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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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구질구질하게 살 게 뭐 있습니까. 잭폿 한번만 터지면 인생이 바뀔텐데. "

지난 26일 오전 7시 강원도 정선의 스몰 카지노 1층 객장. 슬롯머신 게임을 하던 尹모(34.서울 영등포구)씨는 취재진에 이렇게 내뱉듯이 말했다.

尹씨는 "올해 주식에 5천만원을 투자했다가 반토막이 나 잃은 돈을 만회하러 왔다" 며 "한달이건 1년이건 '대박' 이 날 때까지 계속할 작정" 이라고 말했다.

이날 객장 안에는 주로 30~40대로 보이는 1천5백여명이 밤을 꼬박 새운 듯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블랙잭.슬롯머신 등에 열중하고 있었다.

24시간 운영되는 환전창구에는 1천만원짜리 수표를 칩으로 바꾸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띄었다.

카지노 관계자는 "최근 식음을 전폐하고 밤새워 게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며 "거의 매일 마주쳐 낯이 익은 얼굴도 상당수" 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직장인은 물론 자영업자.주부.퇴직자.학생 등 서민들 사이에 빗나간 한탕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본사 취재팀의 현장 확인(지난 24~26일)결과 최근 대박을 노리고 카지노나 경마장.경륜장 등을 찾는 시민들이 크게 늘고 있었다.

지난 25일 오후 경기도 과천 경마장의 일반 관람석. 희뿌연 담배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전광판에서는 마권에 걸린 금액이 40억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판매소에서 한움큼 마권을 구입한 H건설 부장 金모씨는 "오늘 받은 월급을 모두 가져왔다. 크게 한번 터뜨릴 것" 이라며 관람석으로 나갔다. 5분 만에 경주는 끝났고 金씨는 힘없이 마권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金씨는 "몇달 전 회사가 퇴출 위기에 몰려 머리를 식히려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경마가 열리는 토.일요일만 기다리며 산다" 고 토로했다.

그는 또 "정현준.진승현 같은 젊은 녀석들이 금융기관에서 수천억원씩 빼먹는 판에 꼬박꼬박 월급만 받고 사는 내 자신이 우습게 여겨져 나도 모르게 '대박 심리' 가 생긴 것 같다" 고 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경륜장의 경주권 판매소 앞 TV 모니터 앞에는 4천~5천명의 '베팅맨' 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에게 관심은 오직 베팅뿐 경기를 보고 즐기는 것은 아예 관심 밖이었다.

11.3 기업 퇴출로 일자리를 잃었다는 朴모(34)씨는 "퇴직금을 갖고 아내와 함께 금요일엔 경륜장을, 토.일요일엔 경마장을 찾아 베팅한다" 고 했다.

지난 10월 한달간 전국 경륜장 매출액은 1천4백3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백38억원)에 비해 71% 늘었다.

또 전국 경마장의 매출액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2% 증가했다. 경마.경륜장은 사회적으로 불가피한 시설이기는 하나 이상 열기가 문제다.

네티즌들 사이에는 인터넷 복권 열기가 불고 있다. 현재 인터넷에는 7백~8백개의 복권 사이트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K대 2학년 金모(20)씨는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 하숙비를 털어 호주나 캐나다 등의 복권을 사는 게 크게 유행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국내 복권은 배당이 적지만 외국의 복권은 당첨금이 커 최근엔 그쪽으로 몰리고 있다" 고 전했다.

정선=우상균 기자.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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