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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갤러리에서 가구도 파네요, 아트 퍼니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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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1 갤러리 서미에서 전시 중인 박종선씨의 나무 작품들. 각각 월넛데스크·체리램프·메이플오디오.

갤러리에 가는 게 ‘문화 생활’의 표본이 된 건 옛날 얘기다. 이제 갤러리는 또 하나의 쇼핑 공간이다. 그것도 작가가 직접 만든 가구, ‘아트 퍼니처’를 판다. 최근 2~3년 새 걸고 보는 그림보다 실용적인 가구에 눈을 돌리는 미술품 애호가들이 늘어났다. 화랑가에선 가구 전시회가 잦아졌고 아예 가구만 전시하는 갤러리들도 문을 열었다. 덕분에 전문 컬렉터뿐 아니라 직장인·주부들도 가구를 보러 올 만큼 갤러리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판매원이 아니라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는다

‘뭐 찾으세요’ 같은 질문을 받을 필요도, 따라붙는 직원도 없다. 대신 온전히 가구에 대해 집중하고 빠져들 수 있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 서미’엔 원목 테이블·의자·옷장 등 가구 스무 점이 놓여 있다. 3월 19일까지 전시되는 작가 박종선 씨의 작품들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가구 같지만 팸플릿으로 보고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가구의 ‘진가’를 깨닫는다. 테이블 양쪽 다리의 디테일이 다르다거나 옷장엔 손잡이를 없앤 파격적 디자인이라는 등의 설명이다. 작가의 이력, 작업 스타일 같은 소소한 얘기까지 알게 되면 가구의 매력에 자연스레 빠져든다.

가구를 만지는 데 특별한 제한도 없다. 일반 매장처럼 언제든 앉고, 눕고, 열어볼 수 있다. 오히려 대부분의 갤러리에선 ‘체험’을 권한다. 갤러리 서미 권영지 디렉터는 “갤러리에선 가구를 자꾸 만져보고 살펴보면서 작품의 참맛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단 갤러리에서 가구를 살 땐 느긋해야 한다. 집에 들이려면 전시가 끝날 때까지 한두 달은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2 갤러리 서미에서 전시 중인 박종선씨의 나무 작품들. 각각 월넛데스크·체리램프·메이플오디오. 3 크로프트에서 기획·전시한 피트 헤인 이크의 스크랩우드 작품들. 4 그미그라미에선 한정연(쇼파)·이정섭(테이블)·최선호(스툴)씨 등 국내 작가들의 가구 작품을 소개한다.

가구는 작품이다, 오직 하나뿐인 가구

5 이정섭씨의 나무 테이블. 6 갤러리 서미에서 전시 중인 박종선씨의 나무 작품들. 각각 월넛데스크·체리램프·메이플오디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갤러리 아트 퍼니처의 매력을 ‘한정판’에서 찾는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일반 가구와 달리 작가가 하나하나 시간을 들여 만든 ‘핸드 메이드’이기 때문이다. 주부 김혜숙(58)씨도 이런 이유로 종종 갤러리를 찾는다. 10년 전 스탠드 하나에서 시작해 테이블·의자·협탁 등을 아트 퍼니처로 들여놨다. 김씨는 “일반 가구점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이 만족스럽다”며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작품에 내 삶의 흔적까지 묻어나니 가치를 더한다”고 말했다. 획일적인 아파트 문화에선 이런 독창성이 더욱 부각됐다. 갤러리 ‘크로프트’의 구병준 실장도 “모두 똑 같은 구조에 살면서 가구 하나 정도는 다르게 쓰자는 고객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경기 침체에 극과 극으로 갈린 가구 시장이 분위기를 띄웠다. 가격 거품이 있는 수입 가구와 중국산 저가 가구만 남은 시장에서 갤러리가 검증한 아트 퍼니처가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북유럽 이어 미국 작가 작품 뜬다

갤러리의 가구 전시는 한 발 앞선 트렌드를 보여준다. 꾸준히 해외 페어에 나가 인테리어의 아이콘이 될 만한 가구들을 조사하고, 유망 작가들을 발굴하기 때문이다. 패션 바이어가 해외 컬렉션에서 유행을 감지하는 것과 비슷하다. 요즘 국내에 유행하는 빈티지 가구를 처음 소개한 곳도 갤러리였다. 2005년 갤러리 서미는 장 프루베를 비롯해 샤를로트 페리앙, 찰스 & 레이 임스 등의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의 빈티지 가구전을 잇따라 열었다. 이는 영국·프랑스 가구에만 관심을 쏟던 한국인들에게 스칸디나비아 가구를 ‘전파’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 막 관심을 끌기 시작한 스크랩 우드도 ‘크로프트’의 전시를 통해 알려졌다. 스크랩 우드의 창시자인 작가 피트 헤인 이크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전시하며 독점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갤러리 서미 박필재 이사는 “요즘 국내에선 북유럽 가구가 인기지만 갤러리들은 이미 새로운 작품들을 찾아나섰다”며 “마리아 퍼게이, 웬델 캐슬 등 미국 컨템퍼러리 작가들이나 해외에서도 인정받을 국내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격은 얼마나
수입 가구보다 비싸 … 작품값으로 생각하세요

아트 퍼니처의 가격은 수입 가구보다 비싸다. 테이블이 800만~2000만원, 의자가 200만원이 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갤러리들은 오히려 가구라서 회화·조각보다 홀대받는다고 푸념한다. ‘그미그라미’의 김선숙 큐레이터는 “작가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할 땐 적절한 편”이라며 “그림은 당연히 작품으로 보면서도 가구는 상품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초보자들은 테이블과 의자가 가장 무난하다. 테이블은 쓰임새가 많아서, 의자는 집안에 포인트가 되는 ‘입문 상품’이라서다. 가끔은 쇼핑 초보 중 투자용으로 가구를 사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모두 시간을 두고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는 시장이 워낙 작아 회화처럼 거래가 쉽지 않은 탓이다. 투자가치보다는 ‘작가의 독창성이 얼마나 담겨 있느냐’를 보고 가구를 고르는 게 후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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