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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황장엽·민주주의·휴매니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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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인권보장과 신장을 지향하고 있다.

경제적 시각으로 보면 자유시장 경쟁체제 확보, 사회적으로는 자율성이 있는 다양한 집단이 활동하고, 정치적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다원화된 체제를 말한다.

*** 표현의 자유 침해 부당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인권신장으로 고대.중세를 거처 산업사회가 형성될 때까지 군주나 국가공권력에 자유로운 의사표시, 사회집단의 이익표출 통로 개설, 정당조직과 선거로 국민에 의한 정권장악까지 가능하게 정치적 민주화로 성숙됐다.

산업사회 이후에는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괴리가 민주주의 경제측면을 저해한다 하여 정치.경제적으로 완전한 민주화를 혁명적 공산주의로 일거에 달성하려는 마르크시즘이나 점진적으로 제도권에서 해결하려는 진보개량적 방법이 병존해 왔다.

한국에서는 균형적 민주화 기틀을 마련하려던 이승만(李承晩)은 1인 장기집권, 박정희(朴正熙)는 유신정권, 전두환(全斗煥)과 노태우(盧泰愚)는 신군부 정권으로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는 독재정권으로 규정하여 타도한 저항운동이 민주화였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정부주도형의 경제발전을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개발독재라 하여 시민저항운동으로까지 이끈 민주화세력이 현재의 김대중(金大中)정권이다.

이들 민주화세력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없는 인권유린은 경제발전을 저해한다 하고 최소한 경제발전과 인권신장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며 투쟁했다.

한편 김일성(金日成)의 유일주체사상을 민족의 이념이나 영생하는 종교로 생각하고, 이를 승계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현 북한체제에 도전해 남한엔 온 황장엽(黃長燁)비서는 북한체제 내의 표현의 자유와 인권신장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당은 황장엽 비서의 북한민주화 발언이나 운동을 냉전시대의 수구적 발상이라 하고 남북화해의 시대에 자제하길 바라고, 같은 맥락에서 한때 국가정보원은 안전가옥에서 내보내 일반 탈북자들처럼 생활하도록 조처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도 있다.

자율성을 가진 다양한 비판적 목소리가 허용되고 개인이나 기업이 시장경쟁체제에서 자유스럽게 생활하고 정부의 인권신장과 생산적 복지정책이 유리알 같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열려진 시민사회 운동의 당위성은 유신.신군부.북한의 김정일 시대나 무엇이 다른가.

민주화는 상대적인 것이고 미완성이어서 어떤 국가나 지역에서도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신장돼야 하는 역사성이 있는 것이다.

더구나 황장엽 비서의 북한 탈출과 남한 정착은 전임 정권이 성사시킨 것이며 북한의 탈북자가 유일하게 믿는 한국정부의 국가정보원이 북한정권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황장엽 비서의 안전을 방치하고 정보원장이 북한의 남한총책을 안내나 한다면 북한의 민주인사 누구가 한국에 협조를 구할 것인가.

통일된 독일 해외정보부가 신임 정보요원을 충원할 때 모스크바대학.우랄공대.레닌그라드대학 출신의 옛 동독 젊은이들은 러시아 정보부에 연루됐거나 과거 공산주의 독재체제에 물들었을 것으로 보아 연좌제에 묶어 가능하면 충원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보수 기독교민주당이나, 좌파 사회당도 이 점에 서로 동의한다고 총리실 정보보좌관이 말한 바 있다.

*** 북한 체제개선 말문 터야

하물며 인본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에서 보면 북한에 지원하는 남한의 경제원조나 협력은 북한주민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민초 위주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하고 일방적 원조보다 북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획협력형 원조가 강구돼야 할 것이다.

또한 표현의 자유가 북한사회에도 강물처럼 넘쳐흐르게 한국과 세계가 도와줘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의 정부.시민조직.개인도 북한에 대해 인민의 민권신장과 북한 민초를 위한 진정한 복지향상에 초점을 둔 체제개선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이러한 역동적 남북관계가 낮은 단계의 통일에서 높은 단계의 통일로 이어지는 길이 될 것이다. 북한을 굶주림과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일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문제가 아니라 우리시대의 실용적 휴매니티 문제다.

최평길 <연세대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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