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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비디오' 유포행위는 범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탤런트 오현경씨의 사생활을 담은 일명 'O양 비디오' 에 이어 이번에는 가수 백지영씨의 사생활을 담았다고 주장하는 비디오가 시중에 유포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들 비디오는 인기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한 일반인의 호기심에 편승, 인터넷을 타고 급속히 확산하면서 관련 연예인의 인격을 무참히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현경씨는 활동을 완전 중단하고 미국에서 칩거중이며, 백지영씨는 현재 별다른 해명없이 잠적중이다.

시중에는 이들 외에도 여러 연예인의 사생활을 담은 비디오가 더 있다는 등 갖가지 괴담이 떠돌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 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다.

◇ 명백한 사생활 침해=유명인이든 아니든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담은 비디오를 훔쳐 퍼뜨리거나 사서 보는 행위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는 지적이다.

전문가와 대다수 네티즌들은 연예인이 자신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촬영하는 행위 자체는 사생활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로, 누구도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일이며 이를 당사자의 동의없이 일반에 퍼뜨리는 사람을 비난해야 마땅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정곤 변호사는 "명백한 초상권 침해다. 다만 현행법상 형사적 처벌 법규가 미비해 당사자간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외에는 강력한 처벌.규제가 사실상 어려운 게 문제" 라고 지적했다.

오현경씨 사건의 경우 지금까지 유포한 사람을 찾지 못했으며 직접 관련자 누구도 민.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았다.

백지영씨 사건도 그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 이런 사건에 대해 보다 강력하게 수사하고 형사적 처벌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 왜곡된 훔쳐보기 욕망=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타인, 특히 인기 연예인의 사생활을 훔쳐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은 넓게 보아 관음증의 한 형태" 라고 밝혔다.

김박사는 "이같은 욕망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것으로 이를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며 "그러나 이런 쾌감은 허망한 것으로 결국은 시간과 정서의 낭비일 뿐이며 사회적 에너지의 바람직하지 못한 소모" 라고 지적했다.

김박사는 또 "자신의 비디오를 찍고 싶은 욕망 역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연예인등 공인의 경우 그 관리를 특별히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고 덧붙였다.

◇ 흉기가 된 인터넷=오현경.백지영씨 사건은 인터넷이 경우에 따라 무서운 사회적 흉기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초고속통신망의 확충에 따라 많은 데이타를 담은 동영상의 확산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어 인터넷의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터넷포탈업체 ㈜네띠앙의 네티켓추진팀 정지은 과장은 "인터넷은 사용하기에 따라 이기(利器)도, 흉기도 될 수 있다" 며 "몰래카메라가 상상 이상으로 퍼져있어 이제 누구나 오.백씨와 비슷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면에서 네티즌들은 유명인의 사생활 비디오를 즐기고 유포시키는 차원을 넘어 이런 행위를 적극적으로 막고 질타하는 자율적인 네티켓 확립에 나서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전근대적 매니지먼트 시스템=한 엔터테인먼트업체의 관계자는 "데뷔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아직도 일부 연예인은 매니저와 권력.인격적으로 종속관계에 있는 것이 사실" 이라며 "이런 전근대적인 관계가 지속되는 한 유사한 문제는 계속 터져나올 수 있다" 고 지적했다.

최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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