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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루서 쓰러진 롯데 임수혁 끝내 ‘홈’에 못 돌아오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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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 임수혁 선수의 영정. [이영목 기자]

뇌사 상태로 10년 가까이 투병해 온 프로야구 전 롯데 자이언츠 선수 임수혁이 7일 오전 8시28분 4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의 한 요양원에 있던 임수혁은 이틀 전 감기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겼고 이날 오전 급성 심장마비와 허혈성 뇌손상 합병증이 겹쳐 숨을 거두었다. 유족은 아내 김영주(40)씨와 아들 세현(16)군, 딸 여진(14)양이 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동구 상일동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장례식장(02-440-8912)에는 고인의 지인과 야구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부친 임윤빈씨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며 “(임수혁이 쓰러졌을 때) 손자 세현이가 여섯 살이었는데 곧 고1이 된다. 키도 1m82㎝나 될 만큼 컸다. 손자가 상주가 될 정도로 자라줘서 기특하고 대견하다”며 10년을 버텨준 아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국가대표 출신 포수였던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루 주자로 있다 갑자기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뇌에 산소가 통하지 않은 데다 심장 부정맥에 의한 발작 증세로 뇌사 판정을 받았다. 롯데와 히어로즈 등 동료 선수들이 해마다 자선행사를 통해 임수혁의 가족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1000여 명의 팬들이 후원회를 구성해 성원을 보냈으나 임수혁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쓰러진 임수혁만큼이나 가족에게도 10년은 긴 시간이었다. 임윤빈씨는 “수혁이 엄마가 일주일에 여섯 번씩 병원을 찾아가 아들을 주무르며 애를 썼다”고 전했다. 임씨는 “처음 쓰러졌을 때 담당의사가 짧으면 3년, 길면 5년을 산다고 했는데 10년이면 상당히 오래 산 것 아니냐”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부인 김씨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려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남편의 쾌유를 바랐지만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다”며 “유족을 대표해 많은 성원을 해주신 팬 여러분과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울먹였다.

임수혁의 강남중-서울고-고려대 1년 후배인 이상훈(전 SK 투수)은 이날 야구인 중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았다. 임수혁은 대학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이상훈에게 용돈을 주고 팀을 이탈한 이상훈을 설득하는 등 자상한 친형 노릇을 해주었다. 롯데 주장 조성환은 “후배들이 자주 못 찾아 봬 마음 아프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선수와 팬 모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라며 슬퍼했다. 조성환은 임수혁이 그라운드에 쓰러진 순간 타자로 타석에 서 있었다.

유족들은 처음에는 고인이 국가대표 시절 꽃다발을 목에 걸고 귀국하던 영정을 준비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된 사진이어서 2000년 4월 롯데 유니폼을 입고 홈런을 때린 뒤 홈으로 들어오던 사진으로 교체했다. 비록 몸은 2루에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임수혁은 영정에서는 홈에 들어오며 환히 웃고 있었다.

유족들은 9일 성남 화장장에서 고인을 화장한 뒤 경기도 하남시 가족납골당에 안치할 예정이다.  

글=신화섭·김효경 기자 , 사진=이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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