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 서울교육청 ‘하이힐 폭행’ 장학사 “나만 뇌물 줬나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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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시험 비리의 발단이 된 ‘하이힐 폭행’ 사건의 주인공인 여성 장학사가 기소됐다. 이 장학사의 폭로로 장학사 시험 청탁과 관련해 뇌물을 준 혐의가 드러난 다른 교사 세 명도 줄줄이 기소됐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는 서울시교육청 중등 인사 담당 장학사 임모(50)씨에게 수백만에서 수천만원을 건넨 혐의(뇌물 공여)로 서울시교육청 장학사 고모(50·여)씨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7일 밝혔다. 앞서 검찰은 돈을 받은 임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고씨는 2008년 초 “장학사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해 달라”며 임씨에게 2000만원을 건넨 혐의다. 앞서 고씨는 지난해 12월 임씨 등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하이힐로 임씨를 때려 경찰에 입건됐다. 말을 함부로 한다면서 시작된 싸움이었다. 하지만 고씨는 경찰의 폭행 사건 조사에서 “임씨에게 뇌물을 줬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술자리의 사소한 폭행이 교육계의 뇌물 사건으로 비화된 것이다. <본지 1월 22일자 16면>

고씨는 임씨가 자신 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추가 범행도 폭로했다. 고씨는 검찰에서 “임씨가 Y고 교사인 노씨에게도 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또 “임씨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는 것도 본 적이 있다”고 폭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고씨의 진술을 근거로 임씨가 노씨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확인했다. 검찰 조사에서 노씨는 “임씨가 ‘전교조 활동을 해 장학사 시험에 합격하기 어렵겠지만 도와주겠다’고 해서 1000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임씨의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중학교 교사 윤모씨와 고교 교사 임모씨가 각각 1100만원과 500만원을 건넨 혐의도 밝혀냈다.

이번에 기소된 4명은 모두 장학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이번 기소로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장학사는 직위 해제되며 대기 발령자는 장학사 발령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하이힐 폭행’ 사건으로 시작된 고씨의 폭로가 장학사 시험의 구조적 비리를 밝혀낸 발단이 된 셈이다. 이로부터 촉발된 서울시교육청의 비리 수사는 납품 비리, 방과후 학교 비리, 인사 비리 등 교육계 전반의 부조리 수사로 확대되고 있다.

고씨의 하이힐 폭행은 피해자인 임씨와 합의가 이뤄져 처벌 없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뇌물 공여와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게 됐다. 재판 과정에서 돈을 준 명목과 상황 등을 놓고 서로 다툴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모두 4600만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조사된 임씨가 당시 상급자에게 상납을 했는지도 조사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임씨의 당시 상관인 서울 지역 고교 교장에게 뇌물의 일부가 전해졌는지를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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