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번엔 고려청자 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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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도쿄=오영환 특파원, 정재헌.예영준 기자] 일본의 중견 도예가가 한국 도예가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뒤 고려청자 복원에 성공했다고 속여 세계 각지에서 전시회를 열고 각종 상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뒤늦게 이를 알게 된 한국 도예가들이 항의하자 26일 방한, 도예 관계자들을 만나 사실을 시인하고 사죄했다. 한편 그의 해외 전시회를 후원해 온 일본 외무성은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도쿄(東京)신문은 이같은 사실을 27일자 1면과 사회면 머릿기사로 상세히 보도했다. 일본에서는 이달 초 고고학자의 구석기 유적 날조에 이어 도자기 사기품 사건까지 터져 문화계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게 됐다.

문제의 작가는 일본 교토(京都)에서 활동 중인 다니 슌세이(谷俊成.70). 도쿄신문 보도에 따르면 화학회사 연구원 출신인 그는 1960년대부터 한국 도자기를 일본 애호가에게 파는 중개업에 종사해 오다 90년대 들어 청자를 연구하는 '특수공예 작가' 를 자처했다.

그는 "한국의 인간문화재 해강(海剛) 유근형(柳根瀅.1894~1993)과 공동으로 고려청자 복원에 성공했으며, 해강 사망 후 스스로 1천2백점을 제작했다" 고 주장해왔다.

고려청자의 제조기술은 해강에 의해 원본에 가깝게 복원됐으나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경기도 이천의 도자기협동조합은 "다니의 작품 가운데 상당 부분은 이천 S도예 대표 B씨에게 주문 제작하면서 자신의 호 '목인' (木人)을 새겨넣게 한 뒤 구입해 간 것으로 드러났다" 고 밝혔다.

다니는 이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작품들로 일본과 유럽 각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이탈리아와 대만 당국 및 일본 외무성의 표창을 받았다.

다니는 지난 4월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낸 '고려청자, 환상의 기술이 풀렸다' 는 제목의 기고에서 "한국 국립박물관장의 의뢰로 고려청자 복원에 나섰고, 제작 중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깨버리기도 했다" 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이천 도자기협동조합이 이 기고문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니혼게이자이는 27일 다니의 기고문 게재에 대한 사과문을 제2 사회면에 실었다.

26일 오후 이천 도자기협동조합을 찾은 다니는 "해외 미술관에는 고려청자 홍보를 위해 작품을 무료로 기증했다" 면서 "이천 도예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점을 진정으로 사과한다" 고 머리를 숙였다.

해강의 아들인 유광렬(柳光烈) 경희대 조형학부 겸임교수는 "한 일본인의 욕심이 우리 민족 유산인 고려청자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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