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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의 거리 230cm, 감독 숨소리 들으며 경기 예측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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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22면

맨유 팬들이 왕년의 스타 조지 베스트를 추모하는 뜻으로 스탠드에서 그의 사진을 들고 있다. 베스트는 뛰어난 경기력과 강렬한 개성으로 맨유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경기가 열리면 올드 트래퍼드 주변은 인종 전시장이 된다. 번리와 격돌한 1월 17일도 마찬가지였다. 맨유 홈경기를 보기 위해 몇 년간 따로 저축했다는 노르웨이의 노인 부부, 중국과 말레이시아에서 온 아시아 단체 관광객,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여행객까지…. 손에는 올드 트래퍼드 내 상점인 ‘메가 스토어’ 쇼핑백이 쥐어져 있었다.

맨유의 고향 올드 트래퍼드 구장을 가다

폴 스피크맨 ‘메가 스토어’ 관리자는 “우리 주 고객은 영국 사람들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온 팬들이다. 요즘 들어 박지성의 유니폼이 잘 팔려 메인 진열대에 다시 전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맨유는 이제 더 이상 인구 40만 명의 맨체스터만 대표하지 않는다. 미국의 섹시 팝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 ‘반지의 제왕’에 출연했던 할리우드 배우 올랜도 블룸과 도미니크 모나한 등 유명 인사부터 맨발로 공을 차는 아프리카 오지의 이름 모를 소년까지 전 세계 3억3000만 명이 맨유 팬으로 추산된다.

"영국을 넘어 세계로"
데이비드 길 맨유 사장은 “구단 운영의 원칙은 영국이 아니라 해외 팬까지 감동시키는 것이다. 우리를 후원하는 기업은 맨유 브랜드를 달고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역시 해외에서 직접적인 수익을 거둔다”고 말했다. 맨유는 이미 1997년 ‘영국을 넘어 세계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맨유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해외 팬들이 맨유의 각종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통로도 열었다.

구단이 직접 설립한 맨유TV는 하루에 18시간씩 오로지 맨유만을 위한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이는 42개국 1억4000만 명의 시청자에게 공급된다. 맨유 홈페이지는 영어·스페인어·독일어뿐만 아니라 한국어·중국어·일본어로도 운영하는 ‘글로벌 사이트’다. 길 사장은 “더블린(아일랜드)·싱가포르(싱가포르)·홍콩(중국)·두바이(UAE)·시드니(호주) 등에 ‘메가 스토어’ 지점을 열었다. 해외에서 거두는 수입이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면서 궁극적으로 ‘영원한 제국’ 건설이 목표라고 밝혔다. 80년대만 해도 맨유보다 리버풀이 더 유명하고 강했다. 리버풀이 영국에 안주하는 동안 맨유는 세계로 눈을 돌렸다. 지금은 성적에서도, 구단 브랜드에서도 전세가 역전됐다.

맨유는 ‘맨유 파운데이션’이라는 계열사를 통해 맨체스터 지역에 대한 사회 환원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 풀럼에 0-3으로 완패했어도 맨유 선수들은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실시하는 병원 방문을 빼놓지 않았다. 각종 기부와 교육 등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지역 프로그램을 통해 잠재적인 맨유 팬들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다.

슬픔과 좌절도 상품이 된다
올드 트래퍼드 동쪽 벽에는 1958년 2월 6일 오후 3시5분에 멈춰서 있는 낡은 시계가 걸려 있다. 유러피언컵 대회를 치르고 돌아오던 맨유 선수단 비행기가 추락해 주전 선수 8명을 포함해 15명이 사망한 대참사가 있던 순간을 상징한다. 맨유로서는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큰 비극이었다. 시계가 멈춰선 그 시간에서 새로운 맨유의 역사와 영광이 시작됐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뮌헨 참사를 기리며 맨유는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최고의 클럽’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2008년 참사 50주년을 기념해서는 올드 트래퍼드 동쪽 스탠드 터널을 리뉴얼해 구단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를 전시했다. ‘뮌헨 터널’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이자 그저 그런 통로가 ‘맨유 팬이 가보고 싶은 장소’로 탈바꿈했다. 메가 스토어 앞에는 매튜 버즈비 경의 동상이 서 있다. 그 뒤쪽으로는 조지 베스트, 데니스 로, 보비 찰턴 등 맨유의 전설적인 수퍼 스타의 동상이 버즈비 경을 바라보고 있다. 동상 근처에는 맨유의 위대한 역사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경기 전 K-리그는 최신 유행 히트곡을 주로 튼다. 맨유가 경기 전 틀어주는 신나는 음악은 에릭 칸토나, 데이비드 베컴 등 맨유를 거쳐간 수많은 스타에게 팬들이 바친 응원가다. 어쩌면 박지성이 은퇴한 후에도 올드 트래퍼드에는 영국 팬이 박지성을 위해 만든 개고기송이 울려 퍼질지도 모를 일이다.

7만5000명 수용 꿈의 극장
맨유의 레전드 보비 찰턴 경은 올드 트래퍼드를 ‘꿈의 극장(Theatre of the Dream)이라고 명명했다. 7만5000명을 수용하는 거대 규모로 한국의 잠실종합운동장보다 크다. 하지만 실제 팬들과 그라운드 사이의 거리는 숨소리도 들릴 만큼 가깝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이 경기 중 앉아 있는 좌석과 관람석까지는 2m3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퍼거슨 감독이 껌을 씹는 소리와 가끔 질러대는 욕설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거리다.

30년째 올드 트래퍼드 가이드를 맡고 있는 토니 슬레이드는 “이쪽 좌석 가격은 일반 시즌 입장권보다도 비싸다. 하지만 매년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선수들이 코너킥을 차는 지점부터 관중석까지 거리는 6m다. 팬들과 소통하는 거리를 좁힌 발상의 전환이 올드 트래퍼드를 꿈의 극장으로 만든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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