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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억만장자들 EPL로, 구단 대주주 절반 이상이 외국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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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호 20면

FM(풋볼매니저)이라는 컴퓨터게임이 있다.‘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싶을 때 선물해야 하는 아이템’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젊은 남자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몰두하는 축구 게임이다. 선수를 조종해 골을 넣는 일반적인 축구 게임과 달리 자신이 구단주가 돼 조기축구팀 같은 팀을 운영해 맨유 같은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드는 게임이다. 억만장자들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 이런 일을 한다. EPL은 ‘억만장자의 장난감’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요트나 럭셔리 세단을 수집하듯 전 세계 억만장자들은 EPL로 몰려들었다. 재미도 있고, 명예도 누리며, 돈까지 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EPL을 움직이는 큰손

러시아의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는 EPL을 향한 ‘골드 러시’를 촉발시킨 주인공이다. 러시아 정·재계를 주무르던 수완은 2003년 EPL의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1992년 출범 때만 해도 첼시는 맨유·리버풀은커녕 토트넘보다 명성이 떨어지는 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맨유·리버풀·아스널과 함께 당당히 빅4의 반열에 올랐다. 2003년 첼시를 인수한 뒤 3년간 구단 재건에 무려 1조원을 쏟아부었다. 조제 모리뉴라는 젊은 감독을 비롯해 세계적인 스타들을 끌어모아 구단 인수 2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성공하더니 곧바로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미국의 투자가 맬컴 글레이저는 2005년 7월 7억9000만 파운드(약 1조5000억원)에 맨유를 샀다. 이 중 5억 파운드(약 9500억원)를 은행에서 대출했다. 일부 맨유의 골수 팬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클럽 축구의 순수성이 훼손됐다며 강력 반발해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라는 시민구단을 만들어 대항하기도 했다. 돈만 아는 외국인 구단주 때문에 입장권 가격이 폭등한 것도 팬들의 불만 사항이다. 맨유는 수익도 높지만 막대한 부채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맨유와 첼시 이외에 리버풀과 아스널도 미국인과 러시아인이 대주주다.

철권통치를 하다가 시위대에 쫓겨난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도 망명 중에 맨체스터시티를 인수해 화제를 모았다. 자금만 대면 아무에게나 구단주를 허용해도 되는가라는 도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탁신은 지난해 아부다비의 석유재벌 셰이크 모하메드 만수르 빈 자예드 알냐얀에게 구단을 넘기며 1억3000만 파운드(약 247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만수르는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의 이복동생이자 비서실장이며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를 이끌고 있다. 퍼스트 걸프은행 회장까지 겸하고 있다.

스포츠 매니어인 그는 2000억원 이상을 선수 영입에 투자하며 제2의 첼시 신화를 꿈꾸고 있다. 오랫동안 맨유의 위세에 눌렸던 맨시티 팬들 사이엔 누가 구단주가 되든 우승만 하면 좋다는 여론이 대세다. 만수르는 최근 7000억원을 투자해 5600억원에 이르는 구단 부채를 일거에 갚았다. 나머지 1400억원은 더 나은 선수를 영입하기 위한 자금이다. 풀럼의 구단주 모하메드 알 파예드는 이집트 출신으로 영국의 유명 백화점 그룹 해로즈를 이끌고 있다. 그의 다섯째 아들 도디 알 파예드가 고인이 된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의 교통사고 때 함께 숨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EPL 20개 팀 가운데 잉글랜드인이 대주주로 남아 있는 구단은 블랙번·볼턴·번리·에버턴·헐시티·스토크시티·토트넘·위건·울버햄프턴 등 8개 구단이다. 외국 자본의 투자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 중 10위권 이내의 팀은 토트넘과 에버턴뿐이다. 한편 영국 축구계에서 가장 부자로 꼽히는 사람은 인도 철강재벌 아르셀로미탈사의 라크슈미 미탈 회장이다. 2부리그 팀 퀸스파크 레인저스(QPR)의 지분 50%를 소유한 최대주주로 재산 규모가 180억4000만 파운드(약 34조2760억원)에 이른다.

한때 이미 은퇴한 세계적인 스타 지네딘 지단과 루이스 피구를 영입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하지만 구단 인수는 미탈 회장의 흥미였다기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위 아미트 바티아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막대한 자본 투입을 기대하긴 아직 이르다. QPR은 챔피언십리그에서 중위권에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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