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상하이 시민들 ‘내복 패션’ 어찌하오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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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국 도시에서는 추운 날씨만 아니면 겨울에도 내복 차림으로 거리를 산책하는 시민들을 만나기 어렵지 않다. 특히 상하이(上海)는 ‘내복 패션’의 원조 도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이곳에서 내복 패션 논쟁이 뜨겁다. 2010년 세계 엑스포 개최를 석 달 앞두고 내복 패션이 상하이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시 정부의 주장과 패션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이 맞선 것이다.

상하이시는 지난해 7월부터 내복 차림 외출 자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엑스포 행사장 푸둥(浦東)구 부근 주택가는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들까지 동원해 주민들에게 단속과 설득을 병행하고 있다. 행사장에서 세 정거장 거리인 치바 지역 주민연합회 선궈팡(沈國芳) 주석은 최근 현지 언론에 “우리는 엑스포 주최 도시다. 만약 사소한 일로 외국 손님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한다면 이는 상하이는 물론 중국의 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시민대표로 내복 패션을 옹호하는 왕슈아이(王帥)는 “누구나 옷을 자유롭게 입을 자유가 있다. 내복 패션이 싫다면 보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주장했다.

내복 차림 외출을 저속한 생활 습관으로 볼 게 아니라 중국 특유의 문화로 인식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이를 위해 몇 해 전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직작가가 찍은 상하이 거리의 다양한 잠옷 패션 사진을 거론했다. 당시 사진작가는 내복 패션을 중국의 후진적 시민의식의 상징으로 보지 않고 상하이 특유의 패션문화로 보고 그 독특함에 매료됐다는 것이다.

상하이시는 왕과 같은 의견을 가진 시민들이 최소한 20%는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실 중국의 내복 패션은 1930년대 상하이 상류층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상류층 인사들은 내복 차림이 편하고 성적 매력도 있다는 이유로 빨간색 등 다양한 색상의 내복을 입고 외출을 즐겼다. 80년대에 절정을 이뤄 주택가 어디서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내복 외출이 유행했다.

상하이 사회과학원 장제하이(張結海) 박사는 “중국인들이 내복 패션을 즐기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내복 외출이 편하고 실용적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80년대 시민들의 거주지가 비좁고 인구밀도가 높아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구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정부가 잠옷 패션을 규제하는 것은 일종의 시민 세뇌 교육이므로 이보다는 시민들이 스스로 선진 문화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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