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디지로그 사물놀이’의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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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는’ 문명사적인 화두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었나. 그것은 아마도 종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디지로그적’ 감각의 활성화일 것이다. 사막의 모래밭에서 생명의 꽃을 피우는 에너지,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암흑천지의 혼돈에서 깨어나는 힘은 바로 기술과 예술이,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이 공존하는 열린 감각의 세계를 호출한다. 미학이 없는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은 신기함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감동을 줄 수는 없다. 기술이 없는 미학의 재현은 안정감이 있긴 하지만 진화하는 인간의 감각을 표현할 수 없다.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 기술과 영화 ‘아바타’와 같은 3차원 영상이 난무하는 시대에 놀람과 신기함이 있을지언정 뜨거운 감동이 없는 것은 바로 실재하는 감각의 원천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기술의 세계에는 죽은 아바타들의 유령만이 떠돈다. 죽은 아바타의 나무에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사물놀이의 원초적 영성, 즉 신체의 감각세포를 무한으로 개화시키는 소리의 아찔한 조화에 있다. 사물놀이의 원초적 몰입의 순간, 혼과 심을 다하는 연주자들의 무념의 상태, 그리고 모든 소리가 멎는 정지의 순간은 죽은 매화나무에 꽃이 만개하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기존에 한국에서 무대에 올려진 디지털 퍼포먼스는 첨단 기술의 시연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 악기에 센서를 달아서 이미지를 인공 생성하는 미디어아트 퍼포먼스나, 서로 다른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연주하는 네트워크 퍼포먼스는 미학이 부재한 기술주도형 실험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로봇이 인간을 닮으면 닮을수록 미학적 불쾌감이 더 커질 수 있다. 인간 본연의 감성이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예술을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디지로그 사물놀이는 그 벽을 뛰어넘으려는 우리들만의 실험이다. 자연의 심성을 가장 많이 빼어 닮은 아날로그 사물연희와 동시대 IT 문화를 주도하는 우리의 디지털 기술이 유쾌하게 만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공연에 유감스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물놀이의 역동적인 사운드를 더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대목들을 더 많이 배치하고, 홀로그램 퍼포먼스는 상대적으로 절제되었어야 했다. 늘씬한 서양 미녀가 춤을 추는 홀로그램의 장면은 본래의 의도가 살려지기는커녕 공연의 몰입에 시각적 방해가 되었다. 음향과 영상 장치도 좀 더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러나 부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디지로그 사물놀이는 한국 공연문화사에 획을 그을 만한 충격과 미학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