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반년만에 나타난 회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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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20일 오후 3시45분 드디어 마이크 앞에 앉았다. 3부자 동반 퇴진 선언 이후 여섯달 만이다.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鄭회장은 연거푸 물을 마시며 진땀을 흘렸다.

그동안 그는 '외자유치 활동을 한다' 며 걸핏하면 해외에 나가 오래 머물렀다. 오너가 현실을 피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룹은 '경영에서 손뗐다' 고 해명했다.

그는 지난 3월 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벌어진 뒤 현대투신과 현대건설의 자금난으로 나라 경제가 흔들리는 시기에도 절반 이상을 해외에 나가 있었다.

현대를 잘 아는 사람은 "정몽헌 회장은 현대전자 사장으로 있을 때에도 노사분규가 생기면 외국에 나갔다가 분규가 끝나면 돌아오곤 했다" 고 꼬집었다.

鄭회장을 만난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나보다도 사태의 본질을 모르더라" 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鄭회장은 현대건설의 지분 7.82%를 가진 대주주다. 그럼에도 밖으로만 돌다가 현대건설이 1차 부도를 낸 뒤인 지난 2일 한달 만에 미국에서 돌아왔다. 다섯달 째 만나지 않았던 정몽구 회장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현대건설 직원들이 회사 살리기 운동을 벌이며 만든 홈페이지에는 요즘 논쟁이 뜨겁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몽헌 회장이 대주주로서 현대사태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경영일선에 복귀해 회사 정상화에 헌신할 것을 요청한다" 는 글을 올렸다.

사외이사들은 "鄭회장이 현대건설 밖에 머물러 있어 시장의 신뢰를 잃고 있다" 며 "경영에 복귀해 현대건설을 위해 책임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국민정서에도 맞는다" 고 주장했다.

鄭회장의 경영복귀는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경영복귀 여부에 관계없이 그가 해야 할 일은 직원들 지적처럼 스스로 본분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책임경영 자세다.

1조2천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실행하더라도 여전히 4조원을 웃도는 빚이 남아 있어 현대건설이 살아 남으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많기 때문이다.

"복귀해 독선.독단적인 경영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대주주로서 수렴청정만 할 게 아니라 책임있는 자리에 직접 나서서 회사를 제대로 살려야 한다. "

현대건설 직원들이 홈페이지에 올린 이 글은 구멍가게도 고객과 점원을 무시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남중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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