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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투시경] 당 태종의 제왕학 '정관정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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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다 알다시피 '정관정요(貞觀政要)' 는 당(唐)태종의 정치적 언행 중에서 후세의 귀감이 될 만한 것들을 따로 편찬해 묶은 책이다.

자칫 낡은 제왕학(帝王學)을 떠올리기 쉽지만, 지도자의 자질을 가늠하는 기준으로는 천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에 따르면 정관 초년 당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군주가 자신이 성군(聖君) 또는 현군(賢君)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신의 생각에만 의지하게 된다면 신하들은 군주의 과실을 바로잡아 주려고 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기를 바란다 해도 그대로 되지 않아, 군주는 그 나라를 멸망시키고 망국의 신하 또한 자기 집안을 보존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 지도자는 노벨 평화상으로 인권 평화운동은 세계적 공인을 받았고, 활발한 외교 활동에서는 의례적인 찬사와 격려에 휩싸인다.

매스컴, 특히 대중적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방송매체는 정권 홍보를 자임(自任)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 정부 정책의 성공을 구가(謳歌)하는 데 힘써왔다.

정관 3년에 당 태종은 신료들의 간언(諫言)이 없는 것을 이렇게 나무랐다.

"만약 내 결정(조칙.詔勅)에 옳지 못한 점이 있으면 누구든 강력하게 자기의 견해를 주장해 철저하게 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근자에는 무엇이든 내 명을 따라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할 뿐이다. (중략)내 말에 동의한다는 서명이나 하고 그 문서를 공포하는 정도의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 정도의 일을 위해서라면 무엇 때문에 우수한 인재를 발탁해 정무를 위임하는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겠는가."

이에 대한 조리있는 답은 정관 15년의 같은 힐문(詰問)에 신하 위징(魏徵)이 한 말일 것이다.

" '아직 충분히 신임을 받지 못하면서 간(諫)하면 듣는 쪽에서 자기를 헐뜯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또 신임을 받으면서 간하지 않는 것은 국록을 도둑질하는 놈이다' 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중략)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넘어가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윗사람과 동료를 거스르지 않고 동조함으로써 그날 그날을 무사히 넘기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서 세상은 옛말에서의 헐뜯는 자와 도둑놈만 있는 것 같다.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가 그 말을 할 자리에 있지도 않고, 그래서 지도자의 신임을 받고 있을 리가 없는 쪽이고, 정작 말해야 할 사람들은 "지당하옵니다(唯唯諾諾)" 만 되풀이하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말할 자리에 있지도 않고 지도자의 신임을 받고 있는 처지도 아니라 이 또한 헐뜯는 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총체적 위기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세상이 뒤숭숭하다.

도시의 산업현장뿐 아니라 농촌.어촌, 어디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다. 금융 쪽의 난맥상이나 심상찮은 국제동향도 제대로 보고되고 있는지 실로 의심스럽다.

지금까지는 여당의 원천봉쇄로 결말나 있는 야당의 검찰 탄핵안 또한 그 일의 실질적 의미를 지도자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힘있는 사법기관의 일부가 권력의 시녀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여당이 국회에서 발벗고 나서서 정면으로 풀어주어야 할 일이지 국회 상정을 막아 미봉할 일이 아니다.

주제넘지만 지금 대통령과 측근에게 필요한 충언은 '정관정요' 에서 인용된 포숙아(鮑叔牙)의 말 같다.

패자(覇者)로 대성한 제(齊)환공이 관중(管仲).포숙아.영척(寗戚)과 크게 잔치를 열고 축하(헌수.獻壽)를 빌자 포숙아가 일어나 말했다.

"아무쪼록 공께서는 내란이 일어났을 때 국외로 망명하시어 고생하던 때의 일을 잊지 마시고, 관중은 싸움에 져 노나라에 잡혀가 죽음을 기다리던 때를 잊지 말고, 영척은 가난할 때 수레 밑에서 여물을 먹이던 때를 잊지 않게 하소서. "

이문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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