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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눈부셔라, 한라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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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윗세오름에서 내려오는 길, 뒤돌아본 세상은 예전에 보았던 한라산이 아니었다.(위) 윗세오름 근방, 켜켜이 쌓인 눈 물결.

올겨울엔 제주도를 걷지 않으면 애석할 것 같다. 풍부한 적설량 때문에 걷고 싶었던 길이 더 예뻐졌다. 그래서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데도 올레길엔 배낭을 멘 올레꾼이 줄지 않고, 한라산 산행객은 오히려 늘었다는 소식이다. 한라산국립공원 측은 입산 인원이 지난해에 비해 30~40%나 늘었다고 밝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 관광객이 많아 렌터카 업체들이 울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지난해 12월, 서귀포에서 진입하는 돈내코 길이 15년 만에 개방되면서 한라산 등산로는 동서남북에서 가능해졌다. 돈내코 길은 예전 제주목사들이 백록담을 구경하고 하산 길로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글만 읽던 문관들도 쉽게 걸을 수 있는 완만한 길이다. 또한 사철 난대림이 왕성해 아이들이 신기해할 것 같은 식생이 많다.

한라산에 인적이 잦아진 이유는 눈 덕택이다. 올겨울 한라산은 예년보다 일찍 눈이불을 덮었다. 1월 중순께 등산로에 쌓인 눈이 1m를 훌쩍 넘겼다. 한때 겨울비가 내려 잠시 꺼지는 듯싶더니, 지난주 신설이 내려 다시금 폭신해졌다. 산행을 안내하는 나무계단은 말뚝만 보이고 눈에 묻혀 버렸다.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쳐 놓은 오렌지색 뺄랫줄만이 등산로임을 표시하고 있다.

눈보라를 경험한 한라산의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폭설에 혹한까지 겹쳐 백록담 화구벽은 히말라야 고산거벽처럼 얼어붙었다. 시커먼 위용을 자랑하던 백록담 남서벽은 백설기처럼 포근해졌고, 윗세오름 근방 구상나무 군락은 ‘스노몬스터’ 지대로 변신했다. 푸른 가지에 눈이 켜켜이 쌓이고 바람이 깎아 내면서 저마다 조각상이 됐다.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국적 광경에 객들은 그저 입을 벌리고 바라볼 뿐이다.

히말라야 같다.

히말라야 설산을 꿈꾸는 산사나이들은 눈 쌓인 한라산을 반긴다. 백록담 아래 장구목 일대는 올봄 히말라야 등반을 준비하는 원정대의 훈련 캠프가 차려졌다. 한반도 남쪽에서 허리까지 차는 눈은 이제 한라산 정상 일대가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다. 산사나이들은 눈 속에 집을 짓고, 러셀(많은 눈을 지치며 길을 내는 것)을 하고, 빙벽을 기어오르며 오래간만에 찾아온 폭설을 만끽하고 있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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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漢拏山·1950m

● 남한 최고봉으로 독특한 화산 지형과 풍부하면서도 이국적인 식물상으로 유명하다. 맹수가 없으며 아열대·온대·한대식물이 번성하는 식물의 보고다.

● 한라라는 이름은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긴다고 해서 붙여졌다. ‘영주산’ ‘무두산’ ‘원산’이라고도 불린다.

● 화산 활동에 의해 생긴 수많은 원추형의 작은 화산들이 곳곳에서 ‘오름’들을 이루고 있는데 그 수가 360여 개다.

들머리

관음사 코스(8.7㎞, 5시간) 제주시에서 오른다. 대학산악부나 해외 원정을 준비하는 등반대원들의 훈련 장소로 애용되며 다른 코스에 비해 큰 볼거리는 없다.

※관음사 매표소-(1시간)-탐라계곡대피소-(2시간)-개미목-(40분)-용진각대피소-(1시간 20분)-정상/ 탐방안내소 064-756-9950.

성판악 코스(9.6㎞, 5시간 20분) 동쪽 5.16도로에서 시작된다. 진달래밭대피소를 만나기까지는 조망이 트이지 않는 숲이 이어지지만 길이 순탄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다.

※관리사무소-(2시간 30분)-사라대피소-사라오름-(50분)-진달래대피소-(2시간)-정상/탐방안내소 064-725-9950.

어리목 코스(6.8㎞, 3시간) 이 코스에서 조망하는 제주의 오름들은 한라산의 진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백록담엔 이르지 못한다.

※관리사무소-어리목 계곡-(1시간 20분)-사제비동산-(40분)-만수동산(만세동산)-(1시간)-윗세오름대피소/탐방안내소 064-713-9950~3.

영실 코스(3.7㎞, 2시간) 금강소나무 숲과 오백나한상, 털진달래 군락지 등 진경을 볼 수 있다. 역시 백록담엔 이르지 못한다.

※영실휴게소-(1시간)-병풍바위-(1시간)-윗세오름대피소/탐방안내소 064-747-9950.

돈내코 코스(7㎞, 4시간) 지난해 말 새로 열렸다. 남벽의 위용을 볼 수 있는 코스다. 백록담엔 이르지 못한다.

※돈내코-(2시간)-살채기도-(50분)-평궤대피소-(40분)-남벽분기점-(20분)-방애오름샘-(40분)-윗세오름/탐방안내소 064-710-6920~3.

제주관광 사이트 www.jejutour.go.kr

[TIP] 따뜻한 제주도? 1000m 이상 올라가면 생각 바뀌지요

제주도 한라산이라도 겨울 산행은 보온 의류를 든든히 챙겨야 한다. 제주도는 따뜻한 곳이지만 해발 1000m 이상인 고지대는 그렇지 않다. 보통 해발 고도를 100m 높일 때마다 기온은 0.6도씩 내려간다.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는 해안 지역보다 10도 이상 낮아진다. 산행 복장은 두꺼운 면 제품보다는 기능성 등산복을 입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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