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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메이크업 도우미 된 신세대 ‘호랑이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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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작고 예쁜 바셀린’ 살브.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를 수 있는 신세대 ‘호랑이연고’다. 빈티지한 틴케이스가 수집욕을 자극한다.

해외 나갔다 들어오는 친척 한두 명이 자랑이던 시절, 할머니의 문갑에는 그들이 사다 드린 ‘호랑이연고’라는 게 들어 있었다. 호랑이가 그려진 뚜껑을 열면 맵싸한 박하향이 올라오고, 모기 물린 데 바르면 금방 시원해지는 시커먼 연고. 삐거나 멍들거나 이유 없이 아픈 데에도 발랐다. 약장에 바셀린과 안티푸라민, 그리고 호랑이연고만 있으면 겁날 게 없었다. 2010년 호랑이해. 뷰티계에 호랑이연고로 불리는 만능 연고 ‘살브(salve)’가 나타났다. 한때 어머니들이 잠들기 전에 발랐던 바셀린 같은 기름 연고다. 젊은 트렌드 세터들 사이에 지난 가을부터 불기 시작한 살브 열풍은 강추위가 계속되면서 해가 바뀌어도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살브가 뭐기에….

글=이진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몸 어디에나 바른다 ‘향기 나는 바셀린’ 살브

유기농·천연성분으로 진화하고 있는 대용량 멀티밤.

살브는 바셀린이나 비즈왁스(밀랍), 오일을 기본으로 여러 성분과 향기를 섞어 응고시킨 연고 형태의 제품이다. 몇 년 전부터 입술 보호제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밤(balm) 제품들과 성분이나 제형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살브라는 이름은 해외파나 뷰티 ‘빠꼼이’ 사이에서 1~2년 전부터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특징은 이런 거다. ▶입술 보호를 기본으로 손·발, 심지어 엉덩이나 유두 등 온몸에 사용할 수 있고 ▶향기가 있으며 ▶빈티지스러운 작은 크기의 틴케이스에 담겨 있는 것이다. 가격은 6000~2만원대.

밤과 살브는 어떻게 다른가. 실은 업계에서도 밤이나 살브라는 용어를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살브의 원조 격인 스미스 로즈버드에서는 비슷한 제품에 대해 밤과 살브라는 이름을 섞어서 쓰고 있다. 딸기 등 베리향이 강하고 피부에 색깔이 잘 표현되면 립밤, 민트처럼 향이 덜 자극적이거나 무향·무색에 가까운 제품은 살브라고 하는 식이다. 한편 틴케이스에 담긴 만능 연고의 대명사 버츠비는 ‘농부들의 친구’라는 별명이 붙은 대용량 핸드 제품은 살브라고 부르고, 조그만 응급 연고에는 오인트먼트(연고)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름 연고에 디자인과 스토리를 입히다

국내 살브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살브의 ‘양대 가문’은 북미에서 건너온 로즈버드와 영국의 로즈앤코다. 로즈버드는 1892년 약사인 닥터 스미스가 개발했다.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며 살브를 ‘유서 깊은 상품’으로 내세운다. 또 파파라치 컷에서 니키 힐튼이 셋째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찍어 바르던 그 제품이 바로 로즈버드의 살브다. 이렇게 전통은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과 만나 새로운 전설을 쓴다.

국내 살브 애호가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제품은 로즈앤코의 장미향 살브 로즈페탈이다. 스토리 때문이다. 로즈앤코는 영국의 TV쇼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캐롤라인 로즈가 엄마와 함께 만든 브랜드다. 로즈는 요크셔주 ‘브론테 마을’의 유서 깊은 약국을 인수해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다. 여기서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을 쓴 그 유명한 에밀리 브론테다.

빅토리안 스타일 인테리어에 발군의 실력을 보여줬던 로즈는 요크셔의 전통적인 ‘아가(Aga) 오븐’에서 첫 제품을 구워냈다. 소녀 시절 누구나 읽었던 『폭풍의 언덕』의 캐시와 히드클리프의 사랑 이야기에도 슬쩍 편승한다. 역시 귀네스 팰트로 등 고전적 영국 미인들이 사용하는 모습이 노출되며 제품 성공을 이끈 것은 물론이다.

다양한 효과 … 지성 피부는 주의를

화장품 업체 키엘은 모로코 유기농 아르간 오일로 ‘수퍼살브’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무려 스무 가지 용법을 제시한다. 입술이나 눈가처럼 예상할 수 있는 얼굴 부위부터 팔꿈치·발뒤꿈치 등 건조하고 갈라진 각종 ‘꿈치’, 심지어 결혼 반지에 짓무른 손가락, 손톱 큐티클, 갈라지고 뜬 잔머리나 곱슬머리, 지저분한 눈썹 정돈, 감기로 헌 코 주위나 벌레 물린 상처도 살브로 달랠 수 있단다. 아기의 엉덩이 발진도 다스리고 성장기 어린이의 튼살까지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메이크업 도우미 역할도 한다. 눈가나 광대뼈 등 도드라지는 부위를 표현할 때 반짝거리는 글리터와 섞어 글래머러스하게 연출할 수 있다. ‘고현정 피부’를 만들려면 베이스 과정에서 녹여 사용한다. 메이크업을 마친 뒤 살짝 덧발라주기도 한다. 떡지지 않게 표현하려면 손의 온기로 입자를 충분히 녹여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이건 엑스트라밤 계열 화장품을 널리 알린 바비 브라운 여사의 충고다. 건조할 때는 15분 정도 랩으로 감싸 보온효과를 주면 흡수력이 높아진다.

향수가 없을 땐 관자놀이나 손목에 발라 은근한 향취를 내는 데도 좋다. ‘전지현 입술’로 유명한 베네피트의 베네틴트는 애초 스트립 댄서들의 유두를 붉게 물들이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고체형 제품 역시 섹시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다. 다만, 살브나 밤 제형은 기본적으로 유분기가 많기 때문에 지성 피부에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눈썹 뿌리까지 발랐다가 트러블로 고생했다는 경험담도 뷰티 커뮤니티에서 종종 발견된다. 뚜껑이 잘 열리고 쉽게 녹아 가방을 버리기도 하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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