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끝없이 이어지는 미술계 인선 잡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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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요즘 미술계가 시끄럽다.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한국관의 커미셔너로 '상업화랑' 디렉터 출신인 박경미씨가 선정된데 따른 후유증이다. 작가든, 평론가든 미술계 인사들이 모이면 비판과 옹호의 목소리가 오가고 있다.

최근 문예진흥원이 선정.발표한 박경미씨에 대한 비판은 간단하다. 상업화랑인 국제화랑에서 10년간 잔뼈가 굵었다는 것과 자신의 이름을 딴 'PKM' 화랑을 열 예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력.계획 때문에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가 선정권한을 자신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한국을 대표하는 출품작가(2~3명)에 포함되면 갑자기 주가가 뛰기 마련이다.

순수한 예술성보다는 현재 자신과 가깝거나 앞으로 거래관계를 맺어둘만한 작가를 먼저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국제큐레이터협회 선언문에 '상업과는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고 규정돼 있다고 엄숙히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목소리는 이 쪽이 크다.

옹호론은 박씨가 그동안 굵직한 외국작가의 전시를 많이 열어 기획.연출경험이 풍부하고 국제미술계 동향에 밝다는 점을 꼽는다. 국내 작가를 보는 눈이 밝고 기획력이 뛰어나니 그만하면 됐다는 것이다. 화단내 세력다툼에 깊은 관련이 없는 민간인사라는 점도 장점이다.

르네 블록이란 거물 큐레이터도 상업화랑 출신이라고 말한다. 반대론자는 블록은 '플럭서스' 운동을 후원하기 위해 영리목적이 없이 화랑을 운영했던 사람이라고 반박한다.

이에 대해 비판론자들에 "커미셔너 선정을 위한 운영위원회가 20여일전에 박씨를 선정해놓고도 이달 초에야 발표를 한 것 자체가 문제점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 이라고 지적한다.

양측이 모두 동의하는 문제점은 박씨에 못지않은 기획력을 지녔고 경력에도 문제가 없는 인물은 선정위원회 회의의 검토 초반에 탈락했다는 점이다.

미술계 속사정에 밝은 한 인사의 말은 시사적이다. 그는 "모든 중요한 인선은 화단내 세력다툼의 결과다.

이번 결과는 적을 덜 만든 사람이 어부지리를 얻은 것일 것" 이라고 해석하고 "선정기준을 미리 발표하고 기획서를 공모.심사하면 잡음은 없어진다. 하지만 쥐고있는 권력을 누가 놓고 싶겠는가" 고 말했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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