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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헤지펀드 첫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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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리바'(이자)와 '가라'(투기)를 금지하고 있다. 빚이 순자산의 3분의 1 이상인 기업에 대한 투자도 못하게 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율법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권에 처음으로 헤지펀드가 등장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슬람교도가 살아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기본법인 '샤리아'에 저촉되지 않는 헤지펀드 '샤리아 이쿼티 오퍼튜니티 펀드'가 나왔다고 10일 보도했다.

이슬람 금융계는 지난 몇년 사이 모기지.대출.채권.보험상품 등을 조심스럽게 개발해왔으나 헤지펀드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헤지펀드는 국제금융시장에 짧은 기간동안 투자해 이익을 올리는 민간 기금을 말한다. 헤지펀드는 선물.옵션.스왑 등 각종 파생금융상품을 교묘하게 조합, 도박성이 강한 상품을 팔아 국제금융시장을 교란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율법이 엄격한 이슬람권에서 '투기의 대명사'로 알려진 헤지펀드가 탄생한 것은 그런 만큼 퍽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FT는 미국의 펀드매니저 에릭 마이어가 이슬람 학자, 법률가, 브로커 등과 2년6개월 이상을 작업해 '샤리아'에 저촉되지 않도록 상품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이슬람권에서는 상품이 경제활동을 거친 후 현금화돼 돌아왔을 때에만 이자와 투기가 아닌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 이 상품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별 투자 내역을 일일이 장부에 적되 이에 대한 선수금을 떼는 방식으로 율법에 위배되지 않는 거래방식을 고안해 냈다. 헤지펀드는 보통 거래를 다 끝낸 뒤 원금과 이자의 개념으로 자금을 결제하지만 '샤리아 이쿼티 헤지펀드'는 본격적인 거래 이전에 미리 자금을 결제하도록 설계해 이자 개념을 희석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코란에 따라 투자할 곳과 투자하지 말아야 할 곳을 추려내는 소프트웨어도 개발해 냈다. 이 소프트웨어는 빚이 많은 기업과 공해 유발형 회사에 대해서 자동으로 투자를 금지한다. 또 무기.담배.술.음란물 판매와 관련된 기업에도 투자할 수 없다.

UBS워버그의 아랍권 지부인 '노리바'의 모하마드 투픽 카나파니 대표는 "이 상품은 최근 고유가로 '오일 머니'가 크게 늘어난 산유국에서 1000만달러 이상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가와 부유한 개인투자가를 겨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 금융기관들은 최근 고유가에 힘입어 현재 3000억달러가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아랍권에서는 영화.음반 등 엔터테인먼트 업체들도 음란물 생산 업체로 지목받으면서 투자 금지 업종으로 묶여 펀드매니저와 율법학자들 간 마찰이 고조돼 왔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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