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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붙잡는 만추의 비경 선암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解憂所)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의 '선암사' -

설악의 가을은 이미 떠날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선암사의 가을은 계절의 끝자락에 앉아 아직도 갈 곳 몰라한다.

나도밤나무.사람주나무.팽나무.굴참나무가 울긋불긋 물든 가운데 서어나무만이 여름내 푸르렀던 옷을 벗어던지고 나목(裸木)으로 변했다.

깊어가는 가을 선암사를 찾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선녀가 목욕하고 하늘로 올랐다는 승선

교(昇仙橋.보물 4백호)아래로 맑은 계류가 흐른다.

상수리.동백.단풍.밤나무는 떠나는 세월을 아쉬워 하듯 마지막 숨을 토하며 온몸을 불사른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이어지는 굴목재 숲길을 넘다 보면 주절 주절 흘러나오는 가을의 전설을 가슴 한가득 담을 수 있다.

시절이 어수선하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곧 겨울이 다가온다. 수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의 회오리속에 퇴출당했다.

쓰라리게 겪었던 IMF의 경험이 다시금 머리속을 맴돈다. 두 어깨를 짖누르는 삶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선암사에서 만난 권근중(52.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씨는 "경제가 걱정인데 세상 돌아가는 것이 답답해 처형 식구들과 함께 산에 왔다" 며 "오르다 보면 정상에 닿듯이 긴 터널을 헤쳐나가다 보면 빛이 보일 것" 이라고 말한다.

조계산(8백84m)은 정상을 경계로 동쪽에 태고종의 본산인 고찰 선암사와 조계종의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품고 있다.

옛부터 경관이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한, 사찰을 잇는 산중통로는 늦가을 가족과의 간단한 산행코스로 제격이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지었고, 신라 경문왕 1년(862) 도선국사가 지금의 선암사를 창건했다. 오래된 사찰답게 경내에는 7점의 보물과 12점의 지방문화재가 있다.

송광사는 조계종 삼대사찰중 하나인 승보사찰. 단일 사찰로는 국가지정문화재가 제일 많이 있다.

경내박물관인 성보각(聖寶閣)에는 국보 3점, 보물 13점, 지방문화재 8점 등이 전시돼 있다.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방법은 선암사~조계산~연산봉~송광사 코스(4시간30분 소요)와 선암사~굴목재~송광사 코스(3시간 소요)가 대표적이다.

어느쪽에서 시작해도 비슷한 시간에 다양한 변형코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기점은 정상이 가깝고 비교적 완만한 선암사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승선교를 지나 강선문(降仙門)을 들어서면 선암사 경내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삼인당앞 선각당(061-754-6323.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에서 은은한 향내음을 맡으며 한잔의 녹차를 마시는 여유로움을 부려보는 것도 좋다.

1시간 정도 비탈길을 올라서면 선암사 굴목재에 도착하고 오른편 능선은 배바위를 거쳐 조계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고개를 넘어 5분여 내려가면 굴목재보리밥집(754-3756.순천시 송광면 장안리)이 있다.

특히 집에서 담근 탁주 한사발은 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기에 제격이다.

보리밥집에서 20여분 동안 걷다보면 송광사 굴목재에 다다르고 여기서 1시간 가량 내리막길을 따라 쉬엄쉬엄 하산하면 송광사에 닿는다.

문의 순천시청 산림과 도립공원담당계(061-749-3512).

<여행쪽지>

선암사는 호남고속도로 승주인터체인지(IC), 송광사는 주암교차로를 빠져나와 20여분을 달리면 각각 목적지에 닿는다.

순천에서 송광사까지 직행버스(061-743-2125)가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20분까지 4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요금은 1천1백원.

순천~선암사간은 순천교통(744-3703)이 일반버스(7백원)와 좌석버스(1천1백원)를 오전 5시50분부터 오후 8시20분까지 4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글.사진〓김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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