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새만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제의 벽골제 축조는 초대형 토목공사였다. 둑 길이만 3.3㎞. 벽골제에서 가까운 새만금 간척지구의 방조제는 그것의 10배인 33㎞이지만, 1700년 전 사람의 힘에만 의존한 벽골제보다 쌓기가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 태종 때의 벽골제 보수공사도 대단했다. 여러 지방에서 모인 1만여 명이 두 달간 달라붙어 땀을 흘렸다. 제주도 사람들도 동원됐다. 풍랑으로 늦게 도착한 제주도 일꾼들은 벽골제 남쪽 방죽을 완성했다. 그래서 이름이 ‘제주 방죽’이다. 벽골제 근처엔 ‘신털미산’이라는 언덕이 하나 있다. 인부들이 버린 짚신과 짚신의 흙을 털어 모은 더미가 산이 됐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태종은 지금도 수리사업에 공들인 임금으로 기억되고 있다. 벼농사에 이로운 비, 특히 음력 5월에 내리는 단비를 ‘태종우’라고 한다.

벽골제는 ‘벼의 골에 있는 저수지’라는 뜻이다. 벼의 골이란 김제와 만경 일대의 넓은 들이다. 이곳을 줄여서 ‘금만평야’라 불렀다. 지역 사람들은 ‘징게맹갱 외애밋들’이라고 한다. ‘징게맹갱’은 ‘김제만경’, ‘외애밋들’은 평야를 일컫는 방언이다.

1987년 첫 개발 계획 발표 이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새만금 간척 사업. 새만금은 금만평야에 버금가는 새(新) 땅이 생긴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새금만’ 대신 새만금이라 한 것은 ‘썩 많은 돈이나 소중한 것’을 의미하는 ‘만금(萬金)’의 음감을 살리기 위한 것이리라.

방조제가 새(鳥) 형상이어서 ‘새’를 붙였다는 설도 있다. 하늘에서 보면 방조제는 유학자 최치원이 살았다는 신시도를 중심으로 서해와 중국을 향해 좌우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는 형상이다. 세계를 향해 웅비하는 새의 땅을 만들겠다는 큰 뜻이 새만금이라는 명칭에 담겨 있는 셈이다. 이렇게 좋은 뜻의 새만금도 소송·시위가 이어지면서 그 의미가 퇴색했다. 조사 결과 사람들은 새만금이라는 단어에서 간척 사업, 환경 파괴를 떠올린다고 한다.

정부가 새로운 새만금 마스터플랜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새만금을 계속 쓰되 ‘아리울(Ariul)’이라는 브랜드를 함께 사용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아리울은 물을 뜻하는 순우리말 ‘아리’와 울타리·터전을 뜻하는 ‘울’을 결합해 만든 단어다. 그러나 새만금에서 보듯 이름만 좋다고 만사형통은 아니다. 이름 갈아 치울 일 없게 이름값 하는 아리울을 만들어야 한다.

허귀식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