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희귀병 환자 60만 … 확진에만 평균 3년 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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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광주광역시에 사는 이순신(42)씨는 1997년 ‘수포성표피박리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씨는 “턱에 가벼운 물집이 나서 동네 약국에서 연고를 사다 발랐지만 아물 생각을 하지 않았다. 5년 동안 동네 의원과 전문 병원을 돌아다닌 끝에 이 병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수포성표피박리증은 3도 화상을 입은 정도로 피부가 벗겨진다.

이씨처럼 난치성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국내에 6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미국 희귀질환단체(NORD)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618종의 희귀성 질환이 있다. 이 중 본인부담금을 절반으로 줄여주는 정부 의료비지원사업 대상 질환은 132개다. 하지만 희귀·난치병의 치료제는 드물다. 제약회사들이 환자수가 적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발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희귀병은 증상을 완화하는 약이 개발됐지만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싸다. 한국희귀질환연맹 김현주(아주대 유전질환전문센터 소장) 대표는 “국내에서 30명, 세계적으로 5000명 이상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셔병은 한 사람당 치료비가 3억원 이상 들어간다”고 말했다. 고셔병은 유전자 이상으로 인한 효소 결핍으로 심하면 뼈가 녹아내리기도 하는 병이다.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10살을 넘기지 못했다.

김 대표는 “희귀병의 대물림을 막으려면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며 “검사비만이라도 보험 혜택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귀병 치료에 사용되는 의약품은 대부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임상시험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서다. 희귀질환의 예방 및 지원 등을 담은 관련 법률안은 2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씨의 사례처럼 희귀병은 확진에만 평균 3년이 걸린다. 강직성척추염협회 김성수 회장은 “병을 얻은 지 10년이 넘어 희귀병으로 확진을 받은 환자들도 있다. 어떤 병인지도 모르고 계속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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