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과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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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09학년도 대학 입시부터 도입한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해 너무 빨리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 제도를 직접 운영해온 주요 대학들에서 제기됐다. 이런 지적은 전국 40개 대학이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에 제출한 ‘2009학년도 대학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 집행결과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해당 보고서는 각 대학의 입학본부(입학처)가 지난해 6월 30일 교과부에 제출한 것으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권영길 의원실이 입수해 28일 공개했다.

서울대·연세대 등 주요 대학들은 보고서에서 사교육비 증가 등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입학사정관제의 추진 속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대는 “입학사정관제는 장기적 검토가 필수적이나 (교과부가) 단기적 실적 위주의 가시적 사업 결과를 요구해 장기적 사업 실행이 곤란하다”고 밝혔다. 연세대도 “현재의 입학사정관제 추진 속도가 과도해 사회 구성원의 인식으로는 이를 완전히 수용하기에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과도한 확대와 전형 방법 준비 부족은 입시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사태와 또 다른 형태의 사교육비 증가 요인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KAIST는 “오랫동안 학생을 지도해온 교사의 평가와 입시 결과가 상이함으로써 (수험생들이) KAIST 입학 전형에 불신을 보이고 있다”며 “아예 ‘될 대로 되라’는 방임적 태도와, KAIST는 면접만 잘 보면 된다는 생각하에 면접 대비 학원에 다니는 두 가지 극단적 입시 준비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했다. KAIST는 입학사정관이 개인 심층 면접·토의식 단체 면접 등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도입했었다.

고려대도 ▶입학사정관의 전문성 부족 ▶대학의 제도 악용 가능성 ▶사교육 컨설팅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고려대는 “이로 인해 일부 교사와 학부모가 냉담한 반응을 보여 입학사정관제 연착륙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한 예산은 2007년 20억원에서 올해 350억원으로 열 배 이상 늘었으며, 2009학년도에 4555명에 불과하던 입학사정관제 선발 인원도 2011학년도 입시 때는 전체 대입 정원의 10% 선인 3만7628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지난해 12월 ‘중앙일보-한국교육개발원 교육포럼’에서 “대학별로 2010학년도 사정관제 전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따져 볼 것”이라며 “올해 전형에서 공정성 시비를 일으키는 대학은 정부 지원 대상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말했다.

강민석·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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