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시인 신달자 교수의 '망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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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른네살의 무지한 여자가 밤낮없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간병하며 지압을 배우고 질질 끌며 목욕을 시키는 그 옆에 철없는 아이들이 밥을 달라고 조르고 시어머니가 그 뒤 배경으로 서있는 광경을 세상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말하고 싶어 안달을 했을 것이다. '

신달자(愼達子.57)시인이 1997년 여자로서 숨기고 싶었던 삶의 고통을 털어놓은 자전적 에세이 '고백' 의 일부다.

15살 연상인 스승과의 결혼, 뒤이은 남편의 오랜 투병생활. 소설보다 더 극적인 삶을 꾸려 온 愼시인이 남편 심현성(沈鉉成.숙명여대 명예교수)씨를 지난 21일 떠나 보냈다.

지독하게 아픈 사랑을 하던 스물 몇살 때 낙엽만 바라봐도 눈물을 쏟았던 그녀가 남편과의 이별로 다시 슬픔의 가을과 마주앉은 것이다.

" '부끄럽다' 는 느낌이 드네요. 남편의 죽음을 맞으면서요. 남앞에 서있는 내가 허약해진 것 같아요. "

숙대 조교 시절 교수였던 남편을 만나 68년 어렵사리 결혼에 성공한 愼교수 부부에게 고난이 닥친 것은 고인이 뇌출혈로 쓰러진 77년 5월.

그녀는 '여자로서 이제 막 삶이라는 것을 만들며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나이' 에 남편의 병상을 지켜야 했다.

그녀의 헌신적인 간호로 23일만에 고인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고 비정상적인 몸으로나마 다시 강단에 설 수 있었다.

지리한 24년간의 투병생활에도 불구하고 고인이 정년을 마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곁을 지켰던 그녀의 사랑 때문이었다는 게 주위의 한결같은 얘기다.

고인의 빈소에서 만난 愼교수는 남편을 '턱없이 자신감에 넘쳤던 사람' 이라고 회고하며 "자신과 남편을 덮고 있는 운명과 맞서 싸우며 살아왔기에 지치지 않고 하루하루를 지내올 수 있었다" 고 말했다.

그녀는 "긴 투병생활에도 늘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밝혔어요. 그런 정신적 지구력이 삶의 동앗줄을 쉽게 놓지 않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술회했다.

"어제 집에 뭘 가지러 갔었어요. 언제나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가면 그 사람 앞에 앉는 것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시작이었죠. 그런데 어제는 집에 들어서도 어디에 앉아야 될 지 모르겠더군요. 그의 빈자리가 참 큽디다. "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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