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인 아침엔 그 바람결 하나하나
몰래 불러들여 빛과 그늘의 결을 세우고,
햇살 따가운 한나절엔 그 햇살 한올한올
은밀히 빨아들여 속살 넉넉하게 하고,
비 뿌린 저녁이면 그 비 방울방울
살며시 쓰다듬듯 달래 살갗을 촉촉이 굳히고,
별 반짝이고 지새운 그런 밤엔 그 별빛
하나 둘 깊이 박아 눈부시게 눈부시게 결산한
이제는 통쾌한 가을
탐스런 비밀 깨무는 그 맛 또한
천하일품일 밖엔
(익은 하늘은 눈감아 있고)
- 조영서(68) '통쾌한 가을' 중
산에나 들에나 가을은 바람이며 햇살들을 몰래 불러들여 속살을 가득 채운다. 나무.풀.곡식.과일…. 모두 흘린 땀방울의 무게를 매달고 휘어진 허리를 펴고 있다.
이제는 풍요니, 축복이니 하는 말보다 '통쾌한 가을' 이 더 실감난다. 과일 한 입을 깨물어도 그 맛은 탐스런 비밀이 있어 몸을 달군다. 넉넉히 익은 가을을 넉넉하게 껍질 벗기는 시의 이 통쾌한 맛!
이근배 <시인>시인>